작가의 육성으로 듣는 시는?
7일 오후 2시 홍대 인근의 한 녹음실. 프로듀서의 손짓에 맞춰 시 녹음이 시작됐다. 부스에서 시를 낭송하는 사람은 성우가 아닌 시를 쓴 작가 본인. 헤드셋을 쓴 녹음실 안의 시인이 그리 어색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엄연히 분야는 달랐다. 신은 이들에게 시작(詩作) 능력을 주셨지만 그것을 활자로 제한한 듯 보였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이들은 막상 녹음이 시작되자 실수를 연발했다. 발음을 틀리기도 하고 녹음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그때마다 녹음을 중단했고 시인들은 좁은 부스 안에서 연신 땀을 흘렸다. 이경림 시인은 녹음을 마친 후 “한 글자 한 글자가 덫이었다”며 큰 짐을 덜어낸 듯 환하게 웃었다.
시인들의 낭송은 전문 성우처럼 매끄럽진 않았다. 하지만 시에 관해 그들은 여전히 프로. 녹음이 진행될수록 점점 시에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냈다.
“어떤 분들은 참 좋은 시를 당신이 직접 읽어서 다 망치는 경우가 있다”며 웃던 김사인 시인도 시 ‘아무도 모른다’를 특유의 중저음으로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시인들의 투박하고 때로 떨리는 목소리는 정겹고 호소력 있게 느껴졌다.
김태형 프로듀서는 “그 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기 때문에 연출보다는 편안하게 시인의 육성 그대로를 담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영상 = 작가들이 직접 낭송하는 시 녹음 현장
이날 녹음에 참여한 시인들은 총 4명. 시작(詩作)에도 하루가 빠듯할 것 같은 이들이 어색함을 이기고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이 이날 녹음한 시는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음악이 더해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집배원’ 서비스를 통해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발송된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인 시가 디지털 매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문학 집배원’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2010년 현재는 고정 독자만 42만 명, ‘퍼가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매회 약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현재는 시 뿐 아니라 좋은 문장도 함께 배달한다.
시와 문장은 국내 최고의 문학인들이 직접 선정한다. 지금까지 도종환, 안도현, 나희덕, 문태준 시인 등이 그 역할을 했다. 2010년 ‘문학 집배원’은 김기택 시인과 소설가 이혜경씨가 맡았다.
‘문학 집배원’을 통해 이메일로 전달되는 시와 문장은 활자와 더불어 작가의 육성과 영상이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더 생동감 있다. 김기택 시인은 “시인의 육성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마치 시인이 직접 내 옆에서 읽어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도 자신들의 작품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 독자들과 만난 다는 것에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김사인 시인은 “활자매체로 독자들과 만났던 시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새장가 가는 것과 같은 설렘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녹음된 시는 6월중으로 이메일을 통해 독자들에게 배달될 예정이다. 봄바람을 타고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시와 문장에는 어떤 향기가 날까. ‘문학 집배원’ 서비스 신청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이버문학광장 홈페이지(www.munjang.or.kr)에서 할 수 있다.
이철 동아닷컴 기자 kino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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