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저항 아니면 협력뿐일까… 획일적 ‘親日 잣대’ 적용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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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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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일기 분석서 낸 박지향 교수
“내선일체 적극적 찬동 주장은 거짓”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삶이 최근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의 단순한 조사를 통해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정치적으로 오염된 일련의 획일적인 ‘친일청산’에 반기를 드는 겁니다.”

최근 ‘어느 친일 지식인의 독백-윤치호의 협력일기’(이숲)를 펴낸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57·사진)는 10일 출간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박 교수는 이 책에서 좌옹 윤치호(1865∼1945)가 18세이던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간 은밀하게 기록했던 일기를 바탕으로 그의 내면을 분석했다.

윤치호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지식인이며 사회지도자이자 친일파였다. 1897년부터 독립협회에 적극 가담해 ‘독립신문’의 발행을 책임졌으며 만민공동회 회장도 지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 암살음모로 알려진 105인 사건에 연루돼 1912년부터 3년간 옥고도 치렀다.

이후 기독교 일에만 관여하다가 1938년 기독교 기반의 애국계몽운동 조직인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검거되면서 ‘친일’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중추원 고문을 지냈고 광복 직전에는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도 임명됐다. 태평양전쟁기에 일본의 군사적 승리를 찬탄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대부분 영어로 쓰인 윤치호의 일기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아내에 대한 비판은 물론 일제에 대한 비판까지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며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다 구사하며 국제정세에 밝았던 그가 식민지 지식인으로 겪었던 복잡한 삶을 살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윤치호가 내선일체 정책에 감읍해서 적극적 친일을 하게 됐다는 주장은 허구라고 밝혔다. 국제정세에 밝았던 현실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던 윤치호는 일제의 동화 정책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식민정책에도 시종일관 비판적이었다는 것. 독립보다는 자강이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파시즘과 공산주의자보다는 일제가 낫다는 차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윤치호의 일기 분석을 통해 그 시대 삶의 방식에는 저항 아니면 협력이라는 두 가지 방식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수많은 회색지대가 존재함을 강조한다. 박 교수는 “국내에서 친일청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측에서 모델로 자주 거론하는 프랑스의 친나치 청산도 1970년대에 와서는 ‘대다수 국민의 저항’이라는 신화를 벗겨냈다”며 “이제는 삶이라는 복잡다단한 양상을 고려해 국민으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친일을 평가하는 것이 정부가 위원회를 꾸려 몇 년 사이에 결정할 사안이 아닌 만큼 그런 우를 다시는 범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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