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누구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단다”

  • Array
  • 입력 2010년 2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격동의 지구촌 누벼온 기자 출신 아버지
죽음을 앞두고 아들과 나눈 영혼의 대화
“내면 혁명 중요… 지금 네 삶을 즐겨라”

이탈리아 산골 마을 오르시냐의 별장에서 아들 폴코 씨(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티찌아노 테르짜니 씨. 사진 제공 들녘
이탈리아 산골 마을 오르시냐의 별장에서 아들 폴코 씨(왼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티찌아노 테르짜니 씨. 사진 제공 들녘
◇네 마음껏 살아라/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이광일 옮김/296쪽·1만2000원·들녘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솔솔 부는 2004년의 어느 봄날.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의 산골마을 오르시냐의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 예순여섯의 아버지와 서른다섯의 아들이 마주 앉았다.

풀밭 뒤로는 깎아지른 듯한 계곡이 있고, 강 건너 숲엔 신록이 짙어가고 있었다.

자주색 양털 모자를 쓰고 무릎에는 인도식 덮개를 덮은 채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버지는 독일 슈피겔지의 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티찌아노 테르짜니 씨.

아들 폴코 씨는 영화 제작자다.

폴코 씨는 그해 3월 12일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고 이곳에 왔다. 암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테르짜니 씨는 ‘매일 한 시간씩 같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면서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고 편지에 썼다.》
그들이 몇 달 동안 나눈 대화가 책에 담겼다. 아들과 아버지의 사적인 대화 형식이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베트남전쟁, 캄보디아 내전, 중국의 개혁개방 등 굵직굵직한 역사를 현장에서 목격한 테르짜니 씨의 경험담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972년 봄, 북베트남군의 대공세가 벌어졌을 때 테르짜니 씨는 사이공에 도착하자마자 전선으로 달려갔다. 차에서 내리자 총알이 귓전을 스쳤다. 하늘에선 B-52 폭격기가 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평화롭던 녹색의 벌판에는 어느 날 갑자기 탱크를 앞세운 전쟁이 들이닥쳤다. 1973년에는 베트콩의 마을을 직접 찾아가 며칠 묵으면서 취재를 했다. 베트콩과 함께 지낸 최초의 기자였다. 그는 아들에게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타자(他者)’들 속으로 들어가본 거야.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뭘 원하나. 그들은 어떻게 사나. 그런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지.”

베트콩과 접촉하는 데 성공하고 나자 캄보디아 게릴라인 크메르루주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사정이 달랐다. 1975년 크메르루주가 장악한 수도 프놈펜을 취재하다 그는 소년병들에게 붙잡혀 총살당할 고비를 겨우 넘겼다. 그 뒤 그가 목격한 캄보디아에선 크메르루주에 의해 대량 학살이 벌어졌고 나라 전체가 황폐해졌다.

1980년대 초 그가 들여다본 중국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나라였다. 그도 역시 요리사와 운전사에게 감시를 당했고 집안 전등갓에선 도청기가 발견됐다. 그는 “전쟁 이후 뭔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속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 유학시절 ‘마오 주석 어록’을 읽으며 동경했던 ‘혁명의 나라 중국’과 현실의 중국은 다른 나라였다. 수많은 사람이 혁명 와중에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굶주림과 감시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20세기 역사의 현장을 거치며 그는 점차 진보에 대한 믿음에 회의를 품게 됐다. 그가 본 혁명가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고 했다. 크메르루주는 소년병들을 키워냈고, 중국의 공산당은 홍위병 집단을 만들었다. 농민의 힘으로 싸우던 베트콩조차 정권을 잡자 과거의 적들을 강제수용소에 넣고 비인간적으로 다뤘다.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혁명이 터지면 사람들은 그 새로움에 열광하면서 거기에 휩쓸려 버려. 혁명은 마치 어린아이 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추하고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모든 혁명의 탄생 순간에는 뭔가 황홀한 데가 있어. 혁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약속하지.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 거짓된 모습이 드러난단다.”

그는 인도와 티베트 여행을 통해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내면의 혁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점철된 시끄러운 혁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고요한 혁명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어느 날, 아들이 그에게 “제가 어떻게 살길 바라세요”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네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 그냥 네 마음껏 살아라.”

아들과 몇 달간 긴 대화를 나눈 테르짜니 씨는 이 말을 남기고 2004년 7월 오르시냐 산골 별장에서 숨을 거뒀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