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아방가르드 작가’로 꼽히는 김구림 씨가 ‘음양’ 시리즈에서 선보인 대형 회화(2009년). 사진 제공 CSP111아트스페이스
애당초 그의 예술적 여정에 매너리즘이나 자기 복제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평생을 한결같이 자기 부정과 모험 정신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전위예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구림 씨(74). 2월 12일까지 서울 연희동 CSP111아트스페이스(02-3143-0121)에서 열리는 ‘음양’전은 오늘의 현실에 대한 그의 발언을 접할 기회다. 미국에서 귀국한 뒤 2000∼2009년 작업해온 ‘음양’ 연작을 선보인 전시다. ‘소멸의 미학’을 다룬 1부는 31일까지, ‘Tic Toc Monster’를 주제로 한 2부는 2월 2∼12일 열린다.
불상, 여인의 누드, 해체된 신체, 꽃, 곤충 등 다양한 소재를 엮은 오브제와 그림들. 요즘 눈으로 봐도 기발하고 여전히 도전적이다. 기술문명사회에 대한 성찰, 현대인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업이다. “한국에선 과거에 했던 것을 되풀이하는 작가들이 작품 가격도 오르고 잘 팔리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예전에는 화랑에서 돈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요구했는데 이번 전시는 그런 문제를 떠나 실험적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1958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한 이래 한국 일본 미국에서 45회 개인전을 가졌다. 앵포르멜, 서정적 추상을 거쳐 1960년대 중반부터 무수한 장르와 매체를 오가는 실험작업에 도전했다. 최초의 전위영화(1/24초의 의미), 최초의 라이트(light)아트(공간구조 69), 최초의 메일 아트(매스미디어의 유물), 최초의 대지예술(현상에서 흔적으로) 등의 기록을 남겼다. 쉰이 넘은 나이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고 2000년 돌아왔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항상 전위에 선 그의 작품은 ‘변화’가 키워드. 그래서 “어렵다” “재미있다”는 엇갈린 반응을 얻는다.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하는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존재를 다룬 ‘음양’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풍부한 상징을 담은 작품은 쉽게 독해되지 않는다. 작가는 작업의 바탕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작품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가 분명치 않다. 거기서는 과거와 현재와 종횡으로 중첩된, 이를테면 ‘과거-현재’를 부각시킨다. 그래서 있음은 곧 없음의 상대성이며 서로가 더불어 존재한다.”
전시를 열어도 작품이 팔리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서 갓 귀국했을 때 고생도 할 만큼 했으니 좋은 테크닉을 이용해 팔리는 작품을 해보라는 주변 권유에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다. 막상 만들고 보니 너무 괴로웠다. 모두 불태워버렸다.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는 게 이유다.
그는 “내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더라”며 웃는다. 사람들이 그가 어떻게 먹고사는지 궁금해하면 “가끔 독일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서 어찌 알고 내 작품을 사러 온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고국에서 그의 작품을 알아주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작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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