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동아연극상]‘너무 놀라지 마라’ ‘방바닥 긁는 남자’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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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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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작 없이 공동수상으로 결정
‘너무 놀라지 마라’ 연출-연기상 3관왕

아버지의 시신을 나 몰라라 하는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을 그린 ‘너무 놀라지 마라’(왼쪽)와 좁은 단칸방을 무대로 한국형 노숙인 4명의 이야기를 그린 ‘방바닥 긁는 남자’. 사진 제공 극단 골목길·연희단거리패
아버지의 시신을 나 몰라라 하는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을 그린 ‘너무 놀라지 마라’(왼쪽)와 좁은 단칸방을 무대로 한국형 노숙인 4명의 이야기를 그린 ‘방바닥 긁는 남자’. 사진 제공 극단 골목길·연희단거리패
올해 동아연극상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뻔했다가 결국 ‘너무 놀라지 마라’로 귀결됐다. 28일 열린 제46회 동아연극상 최종심사는 보기 드문 격론 속에 오후 늦게까지 진행된 결과 대상 수상작 없이 극단 골목길의 ‘너무 놀라지 마라’와 연희단거리패의 ‘방바닥 긁는 남자’에 작품상이 돌아갔다. 상금은 각각 1000만 원.

‘너무 놀라지 마라’는 연출상(박근형)과 연기상(장영남)까지 받아 3관왕에 올랐다.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대표는 지금까지 두 차례 희곡상을 받았지만 연출상은 이번이 첫 수상이다. 박 대표는 한때 희곡상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돼 연출상에 희곡상까지 동시 수상하는 전례 없는 영광을 누릴 뻔했으나 결국 첫 연출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방바닥 긁는 남자’도 신인연출상(이윤주)과 무대미술·기술상(이윤택)을 수상해 3관왕에 올랐다. 이윤택 씨는 연출상 4회, 희곡상 2회에 이어 올해 무대미술·기술상까지 수상함으로써 동아연극상 7회 수상의 대기록을 세웠다. 이윤택 씨는 “젊은 작가, 지방 연출가, 신인배우가 뭉친 작품을 뒷바라지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상까지 받았으니 어떤 상을 받았을 때보다 기분이 좋다”면서 “더 나이 먹으면 연기상에도 도전해 보겠다”며 껄껄 웃었다. 극단 골목길과 연희단거리패는 2006년 제43회 동아연극상에서도 각각 ‘경숙이, 경숙아버지’와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로 작품상을 공동수상하며 3관왕, 4관왕에 올랐다.

‘너무 놀라지 마라’는 화장실에서 목매 자살한 아버지의 시체를 방치하는 두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중성과 이기심을 블랙코미디로 희화화한 작품이다. 비루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외에 연출가와 배우가 혼연일체가 된 리듬과 템포,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방바닥 긁는 남자’는 재개발이 예정된 낡은 단칸방에 모여 살며 게으름의 한계에 도전하는 네 사내의 기상천외한 언행을 통해 치열한 경쟁사회의 이면을 풍자한 작품. 한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더불어 삶에 대한 낙천성을 잃지 않은 점과 두 평짜리 비좁은 공간을 입체적이면서 신화적 공간으로 변화시킨 무대연출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희곡상은 ‘하얀 앵두’의 배삼식 작가에게 돌아갔다. ‘하얀 앵두’는 강원 영월 산골마을 전원주택을 무대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의 교감을 그려낸 작품. 심사위원들은 “극적 굴곡이 부족하지만 그늘진 곳의 이야기에서 다양한 의미망을 섬세하게 구축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희곡”이라고 평했다.

연기상은 당초 장영남 씨와 서주희 씨 두 여배우에게 몰아주자는 의견이 유력했지만 남자배우 중 유진 오닐 원작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발군의 연기를 펼친 최광일 씨가 뒤늦게 거명되면서 여배우 장영남, 남배우 최광일로 의견이 모아졌다. 서 씨에 대해서는 여자 심사위원들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평강공주 역을 지지한 반면 남자 심사위원들은 ‘바케레타!’의 미희 역을 지지해 표가 나뉘었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강원도의 한 소읍 양복점을 무대로 한 ‘시동라사’에서 남편에게 헌신적 사랑을 펼치는 양복점 여주인 역을 맡은 이지현 씨와 ‘하얀 앵두’에서 여고생 제자와 사랑에 빠진 윤리교사 역을 맡은 백익남 씨가 차지했다.

특별상은 해외연극이론을 본격 소개해 한국연극평론 발전에 기여한 연극평론가 고 한상철 전 한림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새개념연극상은 올해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시상식은 내년 2월 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젊은 배우들 반가운 약진… 연기 부문 경합 치열
김윤철 심사위원장 총평


‘너무 놀라지 마라’는 연출상, 연기상, 작품상 등 세 부문을 차지한 올해의 수작이었다. 작품상 공동 수상작인 ‘방바닥 긁는 남자’는 여러모로 관심을 끄는 작품이었다. 희곡을 쓴 김지훈 씨는 지난해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았다. 올해 수상자 명단에는 없지만 ‘방바닥…’이라는 한층 더 연극적인 작품을 만나게 돼 반가웠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작가다. ‘방바닥…’으로 올해 신인연출상을 받은 이윤주 씨는 비로소 새로운 연출가로서 미학과 입지를 정립한 듯 보여 희망을 걸게 했다. 희곡상을 차지한 배삼식 씨의 ‘하얀 앵두’는 치밀한 계산과 연극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었다.

이번 심사에서는 연기 부문에서 특히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올 한 해 연극계의 부진에 비해 젊은 연극배우들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연기 생활을 오래 했지만 그간 부각되지 못한 이지현 백익남 씨도 발굴했다.

연기상에 선정된 장영남 씨는 감각과 집중력이 좋고 신체적인 훈련도 잘돼 있는 배우다. ‘너무 놀라지 마라’에서 박근형 연출과의 호흡, 연극의 스타일과 조화를 이루면서 한 인물을 진실하게 표현해냈다. 하기 힘든 역할인데 자유로움을 충분히 보여준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광일 씨가 제이미 역으로 출연한 ‘밤으로의 긴 여로’는 3시간에 이르는 다소 지루한 연극이다. 하지만 그가 등장할 때는 무대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조연이지만 그 역할이 무대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제까지 한국 무대에서 본 제이미 중 단연 최고였다.

심사위원단은 가능한 한 대상을 뽑기 위해 애썼지만 규모나 업적, 격에서 그간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에 견줄 만한 작품이 없었다. 한국 연극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어낼 작품을 찾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올해 여러 중극장이 개관했다. 하지만 더 커진 무대에 아직 적응이 잘 안 된 것 같다. 대체로 좋다 싶은 작품들은 소극장 공연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웠다. 새해부터는 새로운 무대 미학이 훈련 개발돼 중극장 대극장에서도 미학과 기능을 겸비한 공연이 나왔으면 한다.

―국제연극평론가협회 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심사위원 명단:
△김방옥(평론가·동국대 교수) △이병훈(연출가) △이진아(평론가·숙명여대 교수) △정복근(극작가) △최상철(무대미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최치림(연출가·국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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