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젠 사회와 소통화합의 단초 마련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취임법회

“불교가 대중과 멀어진 건 스님들 부덕 탓이죠. 스님들이 교만했어요. 새 총무원장이 하심(下心)의 모범이 돼야 합니다.”(경기 화성시 연화사 비구니 덕월 스님)

“3년 전 영감이 먼저 간 이후로 불교가 남편이야. 불교가 대중의 위안인데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서울 동작구 강경숙 씨)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불교기(佛敎旗)의 다섯 색깔인 청·황·적·백·주황색 천이 드리워졌다. 다섯 가지 색상은 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부처의 가르침 아래 모인 3000여 명의 사부대중은 이날 조계종 새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취임을 맞아 한국 불교의 중흥을 기원했다.

조계사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경내 주차장은 가득 찼다. 지방 사찰의 스님들과 신자들이 타고 온 버스가 조계사 주변을 둘러쌌고, 불자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합장하며 미소를 건넸다.

오전 11시 법종 소리와 함께 취임법회가 시작됐다. 새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부처님께 헌화한 뒤 참석자 모두가 반야심경을 읊고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청법가(請法歌)를 불렀다.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은 이날 원로회의 부의장 밀운 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이익에 얽매여 이합(利合)을 저버리면 가는 곳마다 장애가 따를 것”이라며 “항상 자기절복(自己折伏)과 근기(根機)에 알맞은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대중을 보살피고 종통을 바로 세우라”고 당부했다.

자승 스님은 취임사를 통해 “한국 불교는 사회와 소통하며 화합의 단초를 마련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며 “종단의 미래는 굳센 서원의 갑옷을 입은 사부대중만이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승 스님은 새 총무원의 모토를 ‘소통, 화합, 그리고 불교 중흥’으로 정했다.

교육원장 현응 스님 선출
“경전에만 매달리지 말라”
스님 재교육 강화 최우선

종단 내외에서는 압도적 지지 속에 당선됐고 세수 50대인 젊은 총무원장의 취임을 계기로 변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 취임법회에서 만난 불자와 스님들은 종단의 반성과 새로운 활력을 강조했다. 들뜬 마음으로 서울 여의도에서 왔다는 우인순 씨는 “최근 몇 년간 불교는 종단 내외에서 갈등의 이미지가 강했다”며 “새 총무원장 스님은 무엇보다 타 종교와 정치과의 상생에 힘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 팔공산 선본사의 도건 스님은 “스님들의 도덕적 재무장이 불교의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자인 윤용택 씨는 “젊은 총무원장 스님이 불교의 정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종단의 변화와 소통을 위해서 스님들의 교육에 최우선을 둘 방침이다. 취임법회 뒤 열린 중앙종회의 첫 안건도 교육원장의 선출이었다. 교육원장은 종단 내 강원, 승가대, 동국대 등 교육기관을 총괄하는 자리다. 신임 교육원장에는 전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이 선출됐다. 총무원 기획실장 장적 스님은 “자승 스님은 한문 경전에만 매달리지 않고 스님들이 변화한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교육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승 스님은 또 포교원을 강화하고 신자들을 조직화할 예정이다. 불자들은 기독교나 천주교처럼 한 교당에 다니기보다 여러 사찰을 찾아다니는 성향이 강해 일관된 교육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에서 “부처의 가르침인 원융무애와 상생을 좌표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은 “총무원장 스님께서 불자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삶의 바른 가치를 일깨워 주시기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4일 오후 자승 스님을 예방하고 “총무원장 스님이 사회 복지에 관심이 많으시니 불교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축하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법회 여야지도부 총출동한나라당 정몽준,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앞줄 오른쪽부터)가 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자승 스님의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법회에 참석해 부처님께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법회 여야지도부 총출동
한나라당 정몽준,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앞줄 오른쪽부터)가 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자승 스님의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법회에 참석해 부처님께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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