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역사]<8>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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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자락, 하나의 풍경이 된 ‘美의 요람’

《국립현대미술관은 1982년 재미 건축가 김태수가 설계했다.

당시 40대였던 김태수는 김수근과 경합했는데, 작가 선정을 위한 초안 설계에 주어진 시간은 10일 정도밖에 안됐다고 한다.

설계 경쟁 제안을 받고 급히 귀국한 김태수는 친구의 사무실 한쪽을 빌려 밤낮없이 혼자 모든 드로잉 작업을 했고, 결국 당선됐다.》

부석사처럼 천천히 다가갈수록 새로운 느낌
동물원옆 산속 외로이… 일상과 멀어진 예술

설계 직전 대지에 가서 느낀 그의 감상과 스케치가 이 건축물의 시작이자 종점이었다고 본다. 그것은 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대지의 풍광과 산세였다. 미국에서 오래 머문 그에게 한국의 자연 풍경은 새로운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너무 익숙하다 보면 가까이 있는 소중한 가치를 잊는 법이다. 익숙한 아름다움을 세련되게 잡아낸 김태수의 설계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화강석 외장 마감도 참신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져 이 건물 완공 이후 전국적으로 화강석 외장재가 유행했다.

산세와 부응하기 위해 건축물의 드러남은 최소화했다. 방문객은 건물에 다가가면서 능선의 흐름에 따라 외부 공간이 순차적인 변화를 보이며 전개되는 것을 경험한다. 3만4000m²에 이르는 방대한 연면적을 생각하면 정말 훌륭한 성취다. 김태수는 이런 공간 구성을 위해 ‘단(段)’을 만들었다. 그는 “경북 영주 부석사가 산세를 다루는 좋은 가르침이 됐다”고 했다. 부석사 일주문에서 이어지는 길 위에는 산세와 더불어 대지의 단이 높아질 때마다 새로운 풍광과 건물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구성이 설계의 주요 모티브가 됐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도 부석사처럼 멀리서부터 천천히 걸어서 접근하며 감상해야 제맛이 난다.

건축 설계는 공간의 ‘영역’을 설정하고 다른 영역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 개념이 현대의 건축에서는 거의 상실됐다. 우리는 늘 ‘건물’만을 쌓아올리기에 급급하다. 원래 건물은 공간의 영역을 구성하는 여러 관계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대상과 배경의 구분이 모호한 동양화를 볼 때 ‘관계’를 찾아내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육중한 건물 자체’의 시각적 존재감에 몰두하는 요즘의 사고방식과는 상반되는 세계관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건축물의 존재를 최소화하고 산세와 부응하며 외부 공간의 전개를 서서히 드러냈다. 하지만 건축물과 외부 공간이 만나는 방식에서는 육중함과 무뚝뚝함을 버리지 못해 약간 어색해 보인다. 김태수는 미술관 건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원 화성(華城)에서 얻었다고 했다. 미술관 시설이라는 성격상, 사찰 건물처럼 벽을 열어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간의 진입 과정은 부석사에서, 건물은 수원성에서 착상했다. 지나치게 ‘한국적’이려 의식한 게 아니었을까.

사찰은 세속과 등진 곳이다. 반대로 성(城)은 그 안의 궁(宮) 때문에 폐쇄성을 전제로 하는, 선택된 자만이 출입 가능한 속세의 권위적 영역이다. 둘의 어울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궁금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지와 잘 어울리고 방문객에게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 하지만 현대성을 표방하는 미술관을 도대체 왜 산 속에 외따로 뒀을까. 방문할 때마다 놀이동산 좁은 뒤안길과 동물원을 지나 굽이굽이 한참을 넘어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미술관이 동물원이나 놀이동산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일까. 언제나 그 여정은 ‘길 아닌 길’을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산유곡 유배지의 선비를 만나러 가는 듯해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이곳은 현대 미술의 유배지인가. 또는 박제가 된 현대 미술의 동물원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린이 단체 관람객이 방문객의 주를 이루는 현대 미술의 놀이동산인가.

도시의 일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현대 예술을 얘기하기 어렵다. 현대 예술은 도시의 일상으로부터 배태(胚胎)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나 관람자는 사찰의 구도자나 성채 안의 귀족이 아니다.

서울 옛 국군기무사령부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생긴다고 한다. 이곳의 미술관은 어떻게 될까. 자칫 속세 한복판의 고립된 성지(聖地) 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권위의 중심지가 되지는 않을까. 나는 새 미술관이 ‘일상을 품으며 일상을 혁신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예술 장르의 구태의연한 구분, 또는 딱딱한 전시 형식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같은 건물이 좋은 모범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 광 수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⑨회는 이영범 경기대 교수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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