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웃음을 빼앗긴 결혼식…영화 ‘사일런트 웨딩’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던 결혼식 날, 스탈린이 죽었다. 소련군은 일주일을 애도기간으로 정해 파티와 집회, 웃음을 금지한다. 당연히 결혼식도 장례식도 모두 불허. 하객들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날이 어둑해지자 식장에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사일런트 웨딩’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그렇지만 슬픈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다. 루마니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이 나왔고, 영화는 이 소설을 각색해 만들었다.

영화는 폐허가 된 마을을 비추며 시작한다. 예전 공산당이 공장을 짓는다며 파괴했던 마을이지만 어느새 시대가 바뀌어 공장도 철거 중이다. 이곳에 도착한 ‘파라미디어’ 촬영팀은 특이한 일들을 촬영해 방송국에 파는 사람들. 여자들만 사는 이곳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는데….

시대를 거슬러 1953년. 소련군의 강압 통치가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청년 이안쿠(알렉산드루 포토신)와 마라(메다 안드레아 빅토르)는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애정행각을 즐기는 닭살 커플. 마라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긴 이안쿠가 결혼을 발표하자 마을은 축제 분위기로 들뜬다. 그러나 마을 출신 공산당원 고고니아가 나타나며 상황은 역전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한밤에 이뤄지는 침묵 결혼식 장면이다. 역사가 가져다 준 비극적 상황을 희극으로 역전시키는 힘은 바로 유머에 있다. ‘행운이 가득하길’이라는 건배사가 한 사람 한사람의 귓속말을 거쳐 ‘당신의 허연 가슴이 내손에 가득하길’ ‘진짜로 애 봐주는 사위가 되길’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이가 되길’로 바뀌어가는 장면에선 웃음보가 터진다. 그러나 잠시 후 벌어질 비극을 알게 된 다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을 것이다. 5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루마니아 국민 배우로 불리는 호라티우 마라엘레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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