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십대의 울분 거침없이 폭발… 첫경험처럼 흥분돼요”

  • 입력 2009년 6월 18일 02시 59분


《“브로드웨이는 이제 그 전과 같을 수 없다.” 2006년 뉴욕타임스는 이 뮤지컬의 등장을 이같이 표현했다. 그만큼 브로드웨이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다는 뜻이다. 2007년 미국 토니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받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두 주인공 김무열-조정석 씨

120년 전 나온 독일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했음에도 브로드웨이를 충격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 뮤지컬이 7월 4일 한국어 공연으로 국내 초연의 막을 올린다. 10대의 자위, 성교, 동성애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와 분출하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담은 가사, ‘포기와 베스’풍의 나른한 블루스와 커트 코베인의 ‘스멜스 라이크 틴스 스피릿(Smells Like Teens Spirit)’을 연상시키는 폭발적 얼터너티브 록이 뒤섞인 음악…. 관객의 심장을 뛰게 만들 것이란 기대와 자칫 그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교차하는 무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똑똑한 반항아 멜키어와 소심한 범생이 모리츠 역의 단독배역으로 6개월간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를 지키게 될 김무열 씨(27)와 조정석 씨(29)를 만났다.

먼저 조 씨가 나섰다. 극 중 여자친구 웬들라(김유영)와 극중 사랑을 나눌 때 상당히 높은 수위의 노출연기를 펼쳐야 하는 김 씨를 위해서였다.

“노출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과정까지 정말 첫 경험을 할 때의 두려움과 흥분을 빚어내는 작품의 힘이 강한 거죠. 서른이 다 된 저도 무대연습 과정에서 딥 키스 장면만 봐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는걸요. 누구나 10대 시절에 느꼈던 그런 감정을 다시 체험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김 씨는 제작진이 아직도 고민 중인 욕설 표현에 대해 입을 열었다. 모리츠가 부르는 ‘더 비치 오브 리빙(The Bitch of Living)’, 멜키어가 부르는 ‘토털리 퍽트(Totally Fucked)’ 같은 노래의 거침없는 욕설을 영어표현 그대로 우회하느냐, 한국어 표현으로 바꾸느냐는 문제였다.

“‘싯(shit)’처럼 영어로 가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표현은 상관없지만 좀 추하게 들리더라도 한국어로 바꿔서 부르자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소년들이 가슴속에 숨겨놨던 마이크를 갑자기 꺼내들고 억눌렸던 울분과 응어리를 폭발적으로 토해낼 때 터져나오는 것인데 영어로만 표현하면 그런 맛을 놓치게 되니까요.”

두 배우는 ‘쓰릴 미’와 ‘헤드 윅’ 등 소위 ‘쎈’ 뮤지컬작품에 두루 출연해 왔지만 이번 작품처럼 파격적이고 가슴 뛰게 하는 작품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장면 전환이 정말 예술이에요. 굳이 암전을 안 써도 장면과 장면이 물 흐르듯 바뀌기 때문에 관객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아요.”(조 씨)

“무대 위에도 객석이 있는데 관객 속에 섞여 앉은 배우들이 무대 위 배우의 노래가 관객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싶을 때면 벌떡 일어나 관객의 심정을 표출하기 때문에 무대와 객석이 혼연일체가 될 수밖에 없어요.”(김 씨)

서른 가까운 나이에 그 절반밖에 안 된 열다섯 청소년의 심정을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10대 시절 경험을 교환하고 있다고 했다. 15세 무렵의 둘은 어떤 청소년이었을까.

“무지 순진했죠. 전 중1 때 친구 집 장롱에 숨겨진 ‘야동’을 처음 봤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 먹고 있던 자장면을 토하기도 했어요.”(김 씨)

“전 더 심했죠. 중2 때 여자친구를 처음 사귀었는데 너무 떨려서 1년간 5번밖에 데이트를 못했어요. 떡볶이라도 같이 먹을 때는 혹시 피부라도 닿을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그러나 손이라도 한번 잡은 날은 하늘을 날 것 같았죠.”(조 씨)

2005년 ‘그리스’ 이후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는 두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청교도적 분위기의 독일사회를 이해하랴, 15세 소년의 심정을 되살리랴 연습이 끝난 뒤에도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다. 그런 둘을 시험해보기 위해 각자 상대에 대해 뮤지컬배우로서 춤, 노래, 연기, 외모를 놓고 순서를 매겨보라고 했다. 조 씨는 김 씨에 대해 연기-춤-외모-노래 순이라 답했고 김 씨는 조 씨에 대해 연기-외모-춤-노래 순이라고 답했다. 연기를 가장 앞세우고 노래 솜씨를 가장 뒤로 놓는 것이 똑같았던 둘은 “저희를 보러 오는 관객보다 공연 자체를 보러 오는 관객이 더 소중하다”면서 이번 작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