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이문희 대주교(74·사진)가 첫 시집 출간 이후 19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아득한 여로’(문학세계사)의 머리말이다. 그는 시집 출간에 대해 “괜한 짓을 한 것 같다”며 여러 차례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집이) 내 것이지만 나를 떠나 세상에서 ‘지’ 혼자 살아야 하니까, 욕먹지 말고 잘 살라 그런 의미다”라고 덧붙였다.
이 책에는 1990년 첫 시집 ‘일기’ 이후 20년간 생활과 여행에서 느낀 삶의 단상이 담긴 시 50여 편이 실려 있다.
“…/나는 어릴 때 배가 불룩 나온 어른을 보고/보기 흉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했었는데/지금 내 모양은/그때 그 어른과 같아지고 말았다./그런데도 자꾸 무엇을 먹고/나온 배를 옷으로 가리고 있다/…더 늦기 전에/나도 한 사람이었음을 그려놓아야 한다/…”
시 ‘자화상’의 일부다. 고위 성직자이면서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삶의 흔적을 더듬고 겸허하게 내일을 다짐한다. 그는 “이제 세상 떠날 때도 됐다. 그냥 내 ‘꼴’도 그런 것 아닌가 해서”라며 웃었다.
196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72년 주교 수품에 이어 86년 대구대교구장으로 착좌했고 2007년 은퇴했다. 지난해 1월에는 식도암 수술을 받고 두 달 남짓 병상을 지켰다.
“돌이켜보니 별로 한 일 없이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아요.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까지 못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도 더 읽어야 하고 프랑스어로 된 책도 번역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정말 시간이 정신없이 가네요.(웃음)”
올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는 고등학생 때 만나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대구대교구에 있던 김 추기경이 지도신부였어요. 잠을 실컷 자고 싶다는 추기경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습니다. 항상 일이 많고 잠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천당에서는 푹 쉬시겠죠.”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