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하여 20선]<19>가족사진

  • 입력 2009년 5월 26일 02시 56분


◇가족사진/양귀자 외 지음/은행나무

《“시어머니가 공들여 가꾼 화단에서 내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꽃이 붓꽃이었다. 긴 이파리 사이에 보랏빛으로 피어난 제비붓꽃, 키가 작아 난쟁이붓꽃, 부채 같은 부채붓꽃…꽃은 무리 지을 때가 아름답단다.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열, 스물이 더 귀하니 신기하지, 그 말이 옳았다. 무리 진 붓꽃은 그대로 한 세계였다.”(서하진, ‘개양귀비’) 》

가족, 결혼이 준 최고의 선물

무리 지을 때 더 아름다운 꽃처럼, 사람도 모여 있을 때 아름답다.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하면 한 울타리 안에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다. ‘가족’에 관한 한국 단편소설 9편을 엮어낸 이 작품집에는 양귀자 이순원 김인숙 구효서 서하진 하성란 씨 등 문단의 대표 작가들이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됐다. 때때로 앙금과 일그러진 관계, 기형적인 모습이 비치기도 하지만 함께 있기에 더욱 소중한 가족은 결혼 이후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통로이기도 하다.

양귀자 씨의 ‘마지막 땅’은 도시의 개발주의와 물질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짚어낸 작품이지만 경제적, 물질적 변수가 결혼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참고해볼 수 있다. 원미동에서 토박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강만성 노인네 가족은 갑작스럽게 땅값이 오르면서 땅 처분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게 된다. 부동산 업자는 땅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리고, 아내도 자식들의 사업 자금을 대기 위해 땅을 팔자고 말한다. 하지만 강 노인은 인분 거름을 주며 묵묵히 땅을 가꾼다. 주민들은 거름 냄새가 고약할 뿐 아니라 동네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서 땅값이 더 오르지 않으니 강 노인의 밭을 없애라고 한다. 강 노인은 고집을 꺾지 않지만, 그를 마뜩잖게 여기는 가족들이 오히려 강 노인의 밭을 없애자는 주민들의 요구에 적극 가담한다. 애지중지하며 정성들여 가꾸던 밭이 누군가의 연탄재 폭격으로 엉망이 돼도 아내와 가족들은 태연하기만 하다.

하성란 씨의 ‘별 모양의 얼룩’은 어린 자식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부모의 아픔을 그려낸 작품으로 1999년 실제 발생했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유치원 캠프에 갔던 어린이들이 그곳에서 모기향이 엎어지며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는다. 1년 후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생전 아이들이 좋아했던 먹을 것들을 준비해 전세버스를 타고 함께 사고 장소로 가지만, 그 씻을 수 없는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은 아무도 없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떨쳐내려고 하면 할수록 부모들은 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거나 삶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해진다.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결혼 이후에 맞닥뜨려야 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끔 한다.

권지예 씨의 ‘풋고추’는 가난한 시절 먹을 것이 없을 때면 반찬으로 풋고추를 즐겨 먹던 아버지와 주인공의 덜 여물었던 청춘의 한 시절을 함께 회상한 작품이다. 타고난 낙천성으로 기세등등했지만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아 가족들을 곤궁한 삶으로 몰아넣었던 아버지는 매운 풋고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려운 살림에 대한 불평 대신 직접 공장에 나가 벌이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해와 인내가 있기 때문에 더 값질 수 있는 부부관계를 보여준다.

계모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고은주 씨의 ‘꿈을 꾸었어요’, 억압받은 삶을 살아온 시어머니의 삶을 들려주는 서하진 씨의 ‘개양귀비’ 등이 수록돼 결혼 이후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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