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31>또다시 유럽으로

  • 입력 2009년 5월 6일 02시 58분


1977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경제협력회의 제9차 회의에 참석한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1977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경제협력회의 제9차 회의에 참석한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외자 조달을 위해 1967년 국제경제협력회의(IECOK)가 결성됐고, 1977년 3월 29일 파리에서 제9차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어서 나는 또다시 유럽순방길을 떠나야 했다. 이번에는 먼저 스위스로 가서 에른스트 브루거 경제장관과 면담하고 한국전력이 요청한 화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약 2억 달러의 민간 차관에 대한 스위스 정부의 지급보증을 요청해 승낙을 받았다. 동시에 이중과세 방지협정 체결, 스위스 주재 한국기관 요원의 증원 문제들을 타결했다.

23일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가서 루돌프 키르히슐레거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예방하고 한국 경제 발전상과 제4차 계획을 설명했다. 양국 간 경제협력 증진방안에 관해 의견도 교환했다. 이어 총리, 부총리 겸 재무장관, 통상장관, 오스트리아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등을 차례로 만나 제4차 경제계발계획의 투자 사업을 설명해 그들의 관심과 협력을 유도하려고 했다. 한국의 경제각료가 이 나라를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그들은 나를 융숭히 대접했다. 28일에는 파리에 도착해 그날 오후 앙드레 로시 통산장관을 만나 섬유, 우산 등에 대한 수입쿼터 증액과 한국 인삼에 대한 수입규제 완화 등을 요청해 호의적 반응을 얻었다.

29, 30일 양일에 IECOK 회의가 세계은행 구주사무소에서 개최됐는데 이 회의에서는 무엇보다도 외자도입 계획에 대한 세계은행의 지지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했다. 참석자들에게 제4차 계획의 개요를 설명하고 세계불황 속에서도 한국 경제는 고도 성장 추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또 급속한 수출 신장과 정부의 철저한 외채관리가 있는 만큼 외채상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각국 대표들과의 질의응답이 있었고 미국 대표는 지지 발언을 해줬다. 세계은행 동남아·태평양 담당 부총재인 샤히드 후세인 씨가 4차 계획에 필요한 연간 25억 달러는 무난히 조달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줘 회의 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이러한 IECOK 회의는 개별국과의 교섭에 큰 도움이 됐다.

4월 1일에는 전년에 만난 이후 건설상으로 옮겨 앉은 장피에르 푸르카드 씨를 다시 만나 중동건설 진출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고 오후에는 레몽 바르 총리 겸 재무장관을 방문했다. 총리는 나와 같이 경제학 교수 출신이고 영어도 능통해 서로 친밀감을 느끼면서 이야기했다. 프랑스 정부와의 협의의 요점은 프랑스 민간회사가 한국 민간회사에 연불수출을 하려고 할 때 프랑스 정부가 자국 민간회사에 수출허가 또는 지급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한국에 상품을 수출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프랑스 정부가 자국 민간회사에 지급보증을 해 주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3일간의 교섭 끝에 임계댐(강원 정선군) 건설용 5000만 달러, 현대 종합공장 건설용 4000만 달러, 현대디젤엔진 공장용 200만 달러, 온산(울산 울주군) 정유공장용 1150만 달러, 서울 팔당수원지 500만 달러 등 모두 2억7000만 달러에 대한 지급보증을 확약받았다.

두 차례의 해외 순방으로 4차 계획에 필요한 외자 조달은 거의 확실시됐다. 이제는 계획한 사업들을 순조롭게 추진하는 일만 남았다. 하기야 경제외교에서 고배를 마신 일도 없지 않았다. 다음 회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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