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 반도체 칩(왼쪽)과 일본 토토(TOTO) 공장에서 생산 중인 소변기 모습. 최근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함께 반도체용 세라믹 부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변기 제조업체 토토가 AI 인프라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Getty Images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반도체 기업을 넘어 유리회사와 중장비 업체, 일본 변기 제조사 주가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AI 서비스 기업 자체보다 AI 데이터센터를 실제로 움직이는 전력·냉각·통신·소재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월가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확대 과정에서 핵심 인프라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수혜주로 부상하고 있다. AI 서비스 기업들의 수익성 논란은 이어지고 있지만, AI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병목 인프라’를 쥔 기업에는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는 미국 유리 제조업체 코닝이다. 175년 역사의 코닝은 최근 엔비디아가 광섬유 생산 확대를 위해 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12% 급등했다. 코닝의 광섬유 케이블은 AI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핵심 통신 인프라로 꼽힌다. 회사는 앞서 메타와 최대 60억 달러 규모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노란색 굴착기와 불도저로 유명한 캐터필러 역시 AI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발전 장비 수요가 함께 늘어난 영향이다. 캐터필러는 터빈 엔진 생산능력을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확대할 계획이며, 인디애나 공장에 7억2500만 달러를 투자해 발전기용 엔진 생산을 늘릴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AI 산업이 결국 전력과 냉각, 통신망, 정밀 소재 같은 ‘물리 인프라’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전력·냉각 시스템 기업 버티브 주가는 최근 3년간 2000% 넘게 상승했다. ● “AI를 돌리는 기업에 돈 몰린다”
일본 변기 제조업체 토토도 예상 밖 AI 수혜주로 주목받고 있다. 비데 ‘워시렛’으로 유명한 토토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세라믹 기반 정전척(Electrostatic Chuck)도 생산한다. 정전척은 반도체 웨이퍼를 고정하는 핵심 부품으로, 정밀 세라믹 기술이 필요하다.
토토는 최근 정전척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으며, 주가는 올해 들어 50% 넘게 상승했다.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은 토토를 “가장 저평가된 AI 메모리 수혜주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WSJ는 AI 투자 흐름이 AI 플랫폼 기업 자체보다 ‘AI 인프라 병목’을 쥔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닝과 캐터필러, 토토처럼 수십 년간 소재·산업재 기술을 축적해온 전통 제조기업들이 AI 시대 핵심 공급망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기업 퀀텀스케이프도 AI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시장으로 지목한 뒤 주가가 상승했다. 회사 측은 전력 소모가 큰 AI 데이터센터와 방산 산업을 신규 수요처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닷컴버블 데자뷔” 경계론도
다만 시장 과열 조짐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최근에는 실적이나 사업 구조보다 ‘AI’라는 이름만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진을 겪던 운동화 업체 올버즈는 사명을 ‘뉴버드AI’로 변경한 뒤 하루 만에 주가가 582% 폭등했다. 과거 노래방 사업을 하던 알고리즘홀딩스 역시 AI 물류 사업 전환 계획을 발표한 뒤 주가가 200% 넘게 급등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과 유사한 흐름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도 기업들이 사업 구조와 무관하게 이름에 ‘닷컴(.com)’만 붙이면 주가가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실제 AI 인프라 공급망을 쥔 기업과 단순히 AI 열풍에 편승한 기업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시대에도 결국 수익을 가져가는 기업은 ‘이름’이 아니라 ‘병목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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