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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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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중국 창작뮤지컬 ‘디에(蝶)’는 양축설화를 토대로 중국 뮤지컬의 세계화 1호를 꿈꾸는 작품이다. 양축설화는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난한 선비 양산백은 수년간 동문수학하며 정(情)이 든 축영대가 남장을 한 명문가의 규수임을 알고 그 부모를 찾아가 청혼했다가 퇴짜를 맞자 앓다가 숨진다. 축영대는 시집가는 길에 그의 무덤 앞을 지나다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무덤 속에서 한 쌍의 나비가 날아오른다.
하지만 이 설화는 뮤지컬 ‘디에’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배경이 고대 중국이나 현대 중국이 아닌 판타지 공간으로 비약했기 때문이다. 나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나비인간이 숨어사는 ‘세상의 끝’. 나비인간 족장의 딸인 축영대는 인간과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밤에, 같은 나비인간이자 방랑시인인 양산백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펼치다 붙잡혀 양산백은 화형을 당하고 축영대도 그 불길에 뛰어들어 한 쌍의 나비로 변신한다.
이 줄거리에서 등장인물의 이름만 빼면 중국적 요소는 찾기 어렵다. 수년간 나눈 정이 애틋한 사랑으로 발효되는 동양적 사랑의 묘미는 사라지고 하룻밤 사랑에 목숨을 던지는 화끈한 사랑 지상주의가 펼쳐진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사랑은 곧 투쟁”이라는 마지막 노래에서 절정에 달한다.
‘디에’의 형식에서도 국적 불명의 모호함을 엿볼 수 있다. ‘캣츠’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철골구조물 형태의 세트,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을 작곡한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 풍의 음악, 노래하는 싱어와 춤추는 댄서의 뚜렷한 분화…. ‘노트르담 드 파리’와 ‘돈 주앙’의 연출자 질 마외가 총감독을 맡은 탓인지 중국적 색채는 무채색에 가까워졌다.
이런 정체성의 혼란은 두 방향에서 비롯된 듯하다. 하나는 비서구권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역사성 지역성을 털어야 한다는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에 빠졌을 가능성이다. 한국 창작뮤지컬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재산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양축설화를 현재의 중국 현실에 투사할 경우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감이다. 실제 ‘인간’이 되려다 저주를 받고 ‘세상의 끝’에 숨어살면서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계속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는 나비인간들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된 중국사회 하층민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뮤지컬의 강도 높은 ‘애정만세’는 이를 감추려는 무의식적 강박관념의 산물일 수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