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브라보, 즐거운 인생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대전 40대 직밴 ‘프렌즈’ 봉사연주 9년만에 올가을 콘서트

영화 ‘즐거운 인생’과 다른점? 무대 밖서도 즐겁게 살지요

40대 남성들이 결성한 밴드를 소재로 한 영화 ‘즐거운 인생’이 히트를 친 후 ‘직밴(직장인 밴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한 번쯤은 거론하게 됐다. 기자도 이번 기사 취재를 결정하고 개봉 당시 놓쳤던 영화를 다시 봤다.

하지만 이 직밴 멤버들은 ‘즐거운 인생’과의 비교를 단호히 거부한다.

“영화 주인공들은 악기를 잡는 순간만은 ‘즐거운 인생’을 누리지만 악기를 놓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한없이 초라해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신나게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그리고 그 에너지를 현실까지 이어가는 거죠. 가족들도 좋아하고요.”

대전고, 충남고 등 1970년대 말 대전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던 5명의 친구들이 모여 만든 밴드 ‘프렌즈’를 최근 대전에서 만났다. 신종철(49·에스닷 근무·드럼 & 보컬), 박세만(50·충남조선공업고 교사·베이스기타), 서원호(49·대전시 보건환경연구원 근무·키보드), 장진성(47·아트라스BX 근무·제1기타), 김학선 씨(46·백제문화연구소 근무·제2기타)가 그 주인공이다.

○ 몸은 40대, 악기 잡으면 20대

멤버들을 찾아갔을 때는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밴드의 ‘공식 후원인’인 장세일 꿈돌이랜드 사장이 고향인 백령도에서 직송해 온 해삼으로 큰 ‘턱’을 내는 자리였다. 장 사장을 향해 술잔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높이 세운다.

다른 직장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짬을 내서 모이는 자리. 음악에 대한 얘기가 쏟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날 멤버들의 얘깃거리는 ‘안경’이었다.

“나 지난주에 안경 맞췄어.”

얼마 전부터 신문 글자가 흐리게 보여 결국 안경을 쓰게 되었다며 서 씨가 다소 서글프다는 듯 말을 꺼낸다. 안경 얘기를 시작으로 대화의 주제는 다초점렌즈 안경(초점이 여러 개여서 시선이 이동함에 따라 초점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안경)에서 눈 건강으로, 다시 그냥 ‘건강’으로, 또 ‘건강식품’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화를 듣고 있으면 멤버들은 그저 ‘평범한 40대’였다.

하지만 연습실에서 악기를 잡은 이들의 모습은 달랐다. 대전 서구 월평동 작은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연습실에 도착하자 멤버들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방음이 잘되지 않는 연습실이기 때문에 오후 10시 전에 연습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이유.

문구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보컬 신 씨는 일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멤버가 다 모이는 시간은 빨라도 오후 8시 남짓이다. 이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가요제를 꿈꾸던 ‘고딩’들, ‘직딩’이 되어 무대에 서다.

“그대는 모나리자, 모나리자 나를 슬프게 하네∼.”

‘딱, 딱, 딱, 딱’ 드럼 스틱이 박자를 잡자 노래가 시작된다. 멤버들의 눈빛도 연주 시작과 함께 달라졌다. 드럼과 보컬을 함께 맡은 신 씨는 양발로 밟아야 하는 페달 때문에 몸을 심하게 흔들면서도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열창했다. 베이스기타를 멘 박 씨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야말로 ‘리듬을 탔다’.

밴드가 생긴 후 한 번도 의견 대립으로 싸운 적이 없는 이들은 호흡도 아마추어 이상이다. 눈빛 한번 주고받으면 키보드 앞에 선 서 씨가 애드리브를 터뜨리고, 슬쩍 한번 쳐다보면 또 기타를 잡은 장 씨가 현란하게 음을 흔들었다.

글·사진=대전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100만원씩 현금서비스 받아 악기 장만

반대하던 아내도 “세계적 뮤지션 돼라”

■40대 직밴 ‘프렌즈’

성공한 동창이 지하연습실 제공

위문공연때 오빠부대 몰고다녀

“우리들 꿈은 기가막힌 실버밴드”

밴드는 2000년 처음 생겼다. 대전고 동기인 박 씨와 서 씨, 그리고 이미 통기타 실력에 걸출한 노래 솜씨로 주변 학교에 입소문이 퍼지고 있던 신 씨 등 세 명이 ‘창단 멤버’다.

대학 졸업 후에도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친구 사이였던 세 명이 졸업 20주년을 맞는 기념행사에서 장기자랑 삼아 2, 3곡을 부르기로 하고 젓가락으로 테이블 두드리며 연습하다가 “우리 그냥 밴드나 할까”라고 꺼낸 말이 씨가 됐다.

그런데 싹을 틔우기는 쉽지 않았다. 당장 악기 구입에 드는 목돈이 문제였다. “아내가 알면 큰일나는데…”라며 망설이던 박 씨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카드 한 장씩 손에 쥐고 100만 원씩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악기를 마련했어요. 연습실은 큰 건물을 가진 ‘성공한’ 동창 한 명이 지하 단칸방 하나를 스튜디오로 쓸 수 있게 배려해 줬죠.”

초기 멤버 5명 중 2명은 직장이 바뀌면서 대전을 떠나는 등 2006년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영입된 멤버가 김 씨와 장 씨다.

“정기적으로 정신장애인 요양원이나 노인정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나가는데 그때 악기를 함께 날라주고 설치해 주고 하면서 도와준 게 인연이 됐어요. 2006년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악기 한번 잡아 볼 생각 있나?’라고요.”

두 사람의 말에 폭소가 터지고 “우리가 언제 그랬냐”, “그건 ‘모신’ 거지 곡해하면 안 돼”라는 항의도 빗발치는 순간이었다.

○ 자원봉사 나가면 우리도 ‘오빠부대’ 몰고 다녀요

봉사활동은 밴드를 결성한 후 2년만인 2002년 12월, YMCA에서 일하는 서 씨 친구의 제안으로 처음 무대에 선 게 계기가 됐다. 정신장애인시설인 ‘신생원’을 포함해 4군데의 정신장애인 시설, 양로원 등을 정기적으로 돌아가면서 방문한다.

“처음 정신장애인 시설에 갔을 때는 ‘과연 여기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빛 맞추기도 어렵고, 삭막한 느낌이 강했거든요.”

첫 공연은 마치 벽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었다는 것이 서 씨의 말이다. 하지만 봉사활동 공연이 즐거워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몇 번 공연을 하니 환자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해마다 반복하다 보니 이제 ‘오빠부대’까지 생겼다. “(장)진성이가 여자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공연 준비하러 들어갈 때 ‘왔다 왔다’며 좋아하기도 하거든요.”

시작할 때부터 몰래 돈 빌려 악기 사고, 가족과 보낼 시간도 많지 않은 요즘도 꼬박꼬박 만나서 연습한다. 가족들이 싫은 소리는 안 할까. “2006년 밴드 합류할 때 넉넉잖은 형편에 아내에게 싹싹 빌어서 악기를 샀어요. 악기 메고 연습실로 가고 있는데 문자메시지가 오더라고요.”

휴대전화에는 ‘세계적인 뮤지션이 돼라’는 내용이 찍혀 있었다. 김학선 씨의 아내가 보낸 응원 메시지였다.

다른 멤버도 마찬가지.

“양로원 같은 데 봉사활동을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이 나서 춤도 추세요. 그러다 ‘가겠습니다’라고 하면 손 꼭 붙잡고 ‘우리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더 오라’는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그런 말씀 들으면 부모님께 더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멤버 가족들끼리도 모두 친해 가끔 가족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식구들도 아빠, 남편의 ‘밴드 활동’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 ‘실버 밴드’를 꿈꾸다

고교 시절 만나 같은 모습을 동경하며 청춘을 보내고 불혹이 되어 하고 싶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꿈 많았던 과거와 소박하되 즐거운 현재. ‘평범한’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어떨까.

“실버 밴드 해야죠.”

장 씨의 말이다.

“1주일에 한 번 연습하는데 사실 연습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2차 아닙니까. 가끔은 연습 30분에 삼겹살 3시간 굽고, 맥주 먹으러 또 3차 가고. 재미있잖아요. 오래오래 재미있어야죠.”

서 씨가 거든다. 고등학교 교사인 박 씨는 이미 ‘후학 양성’을 시작했다. 재직하고 있는 충남조선공고의 학생들 몇 명을 데리고 밴드를 결성해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날을 잡고 ‘콘서트’를 하기보다는 ‘번개 공연’을 자주 열어요. 점심시간에 조회대 앞에서 반짝 공연한다고 방송하면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구경하고 있어요. 지금 밴드 하는 아이들 중에는 결석이 잦고 속도 많이 썩히던 친구들도 있는데 밴드에 재미 붙이고 나서는 결석을 하지 않아요.”

각종 봉사활동과 행사 축하 공연 등으로 바쁘지만 올가을에는 자신들의 콘서트를 처음으로 열 예정이다. 직장 동료들에게, 또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즐겁게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멤버들의 생각이다.

대전=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밴드 객원 멤버는 ‘별박사’와 ‘천재소년’▼

‘그룹사운드 프렌즈’에는 특별한 객원 맴버 두 명이 있다. 박석재 과학기술연합대학 천문과학원장과 이 연구소 석사과정에 재학하고 있는 연구원 송유근 군(12)이다. 박 원장은 2004년 대전 유성구 과학로 시민천문대에서 매주 열리는 별음악회에 연주 초청을 받고 가서 만났다. ‘7080’ 음악을 좋아해 약 2년 동안 연습실에 들러 ‘프렌즈’의 노래를 듣고 가곤 했단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한번…” 하며 둘러멘 전자기타에서 말 그대로 ‘현란한’ 기타리브가 쏟아져 나왔다.

“머릿속으로 매번 구상만 하던 일이 있어요. 천문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박 원장은 ‘프렌즈’를 통해 그 꿈을 조금씩 현실로 만들고 있다. 박 원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노래 ‘천상열차분야지도’도 프렌즈를 만나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지금도 산고 끝에 나온 각종 ‘신곡’ 악보를 들고 와 밴드 멤버들과 호흡을 맞춰 보곤 한다.

‘프렌즈’에 애착이 깊은 박 원장은 송 군도 멤버들에게 즐거이 소개했다. 천문연구소에서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는 송 군은 2006년 인하대 입학 후 바이올린을 사러 아빠와 서울 종로구 낙원동 악기 상가에 들렀다가 처음 스틱을 잡았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의자에 앉자마자 애가 ‘필 인(fill in·드럼의 모든 북을 돌아가며 빠르게 흔들어 치는 연주기법)’을 돌리더라고요.”

송 군 아버지의 증언이다. 천문학뿐만 아니라 드럼에서도 나타난 ‘천재성’은 ‘프렌즈’ 멤버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가르칠 필요도 없이 한 번 들려주면 그대로 다 따라 쳐요. 드럼 악보 보는 법도 딱 한 번 가르쳐 줬는데 그 다음부터 척척 읽어내더라고요. 머리가 좋다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박 원장이 처음 송 군을 ‘프렌즈’에 소개할 때는 고민도 많았단다. 괜히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노는 것이나 가르치는 것 아닐까 해서. 그런데 송 군 부모는 아이의 밴드 활동을 오히려 좋아한다.

“요즘 과학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때로는 내 목소리를 줄이기도 해야 하는데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유근이는 밴드 활동을 통해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거죠.” 송 군 어머니의 말이다.

연구소에서 박사급 연구원들과 끝장 토론을 할 수 있어서 즐겁다는 송 군. 매달 연구보조비가 들어와 세금을 내는 ‘납세자’가 되어 즐겁다고 한다.

“천체물리학 10년 공부하고, 입자물리학도 10년 공부하고…, 그래서 멋진 논문 한 편 쓰고 싶어요. 그게 안 되면, 시골 학교에서 과학 선생님 해서 저보다 더 잘하는 제자 만들고 싶고요. 그것도 안 되면, 나무 가꾸면서 우리나라 우주 과학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어요.”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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