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자살버스 탑승!… 죽거나, 혹은 살거나

  • 입력 2009년 2월 26일 02시 57분


삶의 의미 되찾는 창작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

“당신은 자살을 생각하는가.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모험가여, 주저하지 말고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라. 암호는, 공동의 시도.”

올해 창작 뮤지컬 중 기대 작으로 손꼽히는 ‘기발한 자살여행’에 등장하는 광고 문구다.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이런 불온한 뮤지컬이 가당키나 할까. 경제 위기에다 겨울 가뭄까지 겹쳐 지독한 생활고로 인한 자살충동에 기름을 붓는 격은 아닐까.

핀란드 소설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원작을 세계 최초로 뮤지컬화한 이 작품의 1막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 이들이 모여 집단 자살여행을 떠난다는 블랙 코미디를 2018년 통일한국 상황으로 번안했다. 주인공들은 자살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이다. 부도가 난 사업가, 통일 후 ‘용도 폐기’된 군인, 애인에게 버림받은 여인, 이혼 당한 기러기아빠, 고통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 매 맞는 아내, 잊혀진 배우…. 이들은 확실하고 사후처리가 저렴하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은 황천길을 위해 ‘헤븐 익스프레스’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백두산 천지로 돌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작품은 ‘품위 있는 죽음’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2막에는 기막힌 자살치유책이 숨어있으니. 마치 섬처럼 고립된 채 삶의 의미를 잃었던 그들이 작은 자살공동체에서 맺어진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1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연습장에서 지켜본 전막 리허설 공연의 주제는 ‘공동의 구원’에 가깝다.

18명의 자살여행자를 12명으로 압축한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죽음을 놓고 펼치는 다양한 코믹연기 그리고 영화음악가 출신으로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이지수 씨의 서정적 멜로디가 잘 어우러졌다. 특히 “죽음을 향하여 난 모두 끝내리라/죽음을 향하여 난 모두 던지리라”라는 웅장한 죽음의 찬가가 환희에 찬 생명의 찬가로 변하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연출을 맡은 임도완 사다리움직임 연구소장은 “호흡이 다소 긴 원작을 경쾌하게 가져가기 위해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배우의 제스처와 객석을 향한 관광버스가 둘로 갈라지는 등 기발한 무대장치로 웃음코드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 발표 이후 ‘유럽 챔피언’이던 핀란드 자살률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200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 자살률은 10만 명당 18.4명으로 헝가리(22.6명)에 그 자리를 물려줬다. 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인 한국에도 ‘파실린나 효과’가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3월 17일∼4월 19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4만4000∼7만7000원. 1544-155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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