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갈라놓은 ‘영화인을 위한 땅’

  • 입력 2009년 2월 21일 02시 59분


24년전 성금 모아 구입… 2만6400㎡ 처리 놓고 분쟁 휩싸여

“40억 땅 맘대로 헐값 매각”

원로 4명, 강대진회장 고소

“회원 동의 거쳐 8억에 팔아”

강회장측 ‘적정 매각’ 주장

경기 여주군 강천면 강천리 산 35 일대.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 휘감고 나가면서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한때 영화인들의 희망이었다. 1985년 일부 영화인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이곳에 36만 ㎡(약 11만 평)의 땅을 샀다. 여기에 영화 종합촬영장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이 땅은 영화인들 사이에 ‘불화의 땅’이 돼버렸다. 이 땅을 둘러싸고 원로 영화인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져 검찰이 수사에 나서게 된 것이다.

곽정환 서울시네마타운 회장, 정진우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 이창무 서울시극장협회 회장,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 등 원로 영화인 4명은 최근 강대진 삼영필름 회장을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영화계의 유명인사들이 고소인, 피고소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은 24년 전 이들이 사들인 땅의 소유 및 처분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983년경 곽 회장과 강 회장을 비롯한 영화 제작자 및 감독 등 영화인 15명은 한국영화제작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영화 종합촬영소를 건립하기로 했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3억5000만 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사재를 털어 여주군 땅 36만 ㎡를 4억3000여만 원에 샀다. 정부 지원금은 정부가 외화 수입판권을 이들에게 넘긴 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사용하는 형식으로 받았다.

그러나 1987년 영동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이 땅의 한복판을 도로가 가로지르게 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됐다. 이후 1997년까지 이 땅의 대부분은 차례로 분할 매각됐고, 최근에는 2만6400㎡(약 8000평)만이 남았다. 협동조합도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원로 영화인들 중 일부는 남은 땅을 고인이 된 영화인들의 묘역이나 영화박물관 용지로 활용하자는 논의를 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강 회장이 협동조합 회장이자 청산인 자격으로 땅을 제3자에게 8억 원에 매각했다.

분란은 이 땅의 매도가격과 처분 권한에서 비롯됐다. 강 회장을 고소한 곽 회장 등은 강 회장이 회원들의 동의도 없이 헐값에 땅을 팔아치워 최초에 공동모금에 참여한 15명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땅값이 많이 올라 남은 땅이 시가로 40억 원에 이르는데도 강 회장은 지인에게 8억 원에 팔아넘겼으며 회원들에게는 몇백만 원씩만 분배했다는 것. 땅의 시가와 매매가격의 차액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주장이다.

고소인 측은 땅을 그대로 놔뒀으면 신상옥 감독 등 고인이 된 원로 영화인들을 한곳에 모신 ‘영화인 묘역’과 각종 영화 사료를 집대성한 ‘영화박물관’을 조성할 수 있었는데 강 회장의 배임행위로 영화인들의 염원이 무산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강 회장 측은 “일부 필지의 시가를 기준으로 전체 땅의 가격을 계산해 ‘40억 원짜리를 헐값에 팔았다’는 주장은 억지”라며 “적정한 가격을 책정해 회원들의 동의를 거쳐서 매각했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최근 조사부(부장 최종원)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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