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구글코리아 조원규 사장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20년지기와 4인조 밴드연습

월요일 밤마다 즐거운 인생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기업 구글. 그런 구글의 글로벌 사업에서 ‘한국의 구글’을, 더 정확히는 ‘한국 기술로 만드는 구글’을 책임지는 사람, 바로 구글코리아의 연구개발(R&D)센터장 조원규(42) 사장이다.

조 사장의 프로필을 보면 그가 ‘순도(純度) 100% 정보기술(IT)맨’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대학 때도, 석·박사 과정 때도 컴퓨터공학만 전공한 ‘공돌이’. 구글코리아의 사장이 되기 전의 경력도 죄다 IT벤처 창업 아니면 최고기술책임자(CTO) 역임으로 채워져 있다.

이쯤 되면 팽글팽글 돌아가는 두꺼운 안경에, 아무 멋도 없는 심심한 옷차림을 하고, 관심사라고는 오직 ‘기술’ 뿐인 ‘아저씨 박사님’의 모습이 떠오를 법하다.》

기타 치고 로큰롤 부르며

밴드 꿈꾸던 10대 기분 만끽

……………

연습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

이 순간이 주중 최고의 시간

하지만 천만의 말씀. 빌 게이츠나 아인슈타인 같은 분위기를 상상하며 조 사장을 만나러 갔다가는 ‘대(大)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세련되게 정리된 곱슬머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그는 IT기업의 기술총괄 사장이라기보다는 개성 넘치는 뮤지컬 배우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졌다. 운동으로 다진 호리호리한 체격은 청바지와 티셔츠, 캐주얼 남방을 20대 청년보다도 멋지게 소화해낸다.

그런데 최근, IT로 점철돼 있을 것 같은 그의 일상에도 그의 외양만큼이나 ‘반전스러운’ 것이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가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글로벌 기업 IT 수장(首長)의 ‘여가법’을 듣기 위해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22층 구글코리아 본사에서 조 사장을 만났다.

○ 기타 들고 노래하는 ‘공돌이’ 사장님

조 사장은 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항터미널 앞 모 건물의 지하실로 향한다. 이곳에 그가 속한 밴드의 연습실이 있다.

“올 초에 정말 친한 친구 세 명이랑 4인조 밴드를 꾸렸어요. 대학, 대학원, 사회 초년병 시절 만난, 20년도 넘은 오래된 친구들이죠. 작년에 우연히 악기가 있는 바에 갔다가 ‘야, 우리 해볼까?’ 해서 시작했는데, 두세 번 해보니 이거 꽤 재밌는 거예요. 작년까진 압구정동 연습실을 빌려 쓰다가 아예 상가건물 지하 2층에 연습실을 만들고 악기랑 장비도 사 제대로 밴드를 해보기로 했지요. 한 달 임차료가 50만 원쯤인데, 꾸준히 하자면 이게 더 싸겠더라고요.”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이 밴드의 이름은 ‘플랜 b’. 일로 메워진 이들의 일상이 ‘플랜 a’라면 플랜 b는 지친 시간을 다독여주는 또 다른 인생인 셈이다.

플랜 b에서 조 사장은 리드 기타를 맡는다. 한번 시작된 연습은 4, 5시간 동안 이어진다. 보컬은 원래 그의 담당이 아니지만 딱 한 곡, 딥 퍼플의 ‘Hush’만큼은 그가 직접 부른다고 했다.

“우리 세대 남자들은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공부를 그만두고 밴드를 하기엔 제가 되게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꿈으로만 남았지만(웃음). 중고등학교 시절 제 인생은 음악이 전부였어요. 밥은 안 먹어도 음악은 들어야 했죠. 빌보드차트 100위 안에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이 시기의 그는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고 록을 사랑했다. 방 안엔 항상 기타와 키보드가 있었다. 하도 많은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 곡이든 코드 정도는 잡을 수 있는’ 실력도 생겼다. 덕분에 그의 밴드는 요즘 직접 ‘편곡’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가 다 빠르고 강한 록이에요. 드럼을 맡고 있는 막내가 죽어나죠(웃음). 같은 ‘붉은 노을’도 이문세나 빅뱅 버전보단 엠씨 더 맥스 버전을 좋아해요. 비틀스풍의 노래도 록 버전으로 바꿔 연주하죠.”

그는 “딱히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하면 할수록 그 자체로 ‘하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연습이 끝난 뒤엔 멤버들과 함께 근처 음식점을 찾아 늦은 식사에 소주 한잔을 걸친다. 가는 곳은 언제나 일식집, 삼겹살집, 굴국밥집 중 하나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한 주 중 최고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 친구 같은 아빠를 만드는 ‘음악의 힘’

조 사장의 음악 사랑은 가족 관계에서도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결혼도 일찍 하고, 아이도 일찍 낳은 그에게는 벌써 올해 미국 카네기멜런대에 입학한 큰아들을 비롯해 장성한 아들이 둘 있다.

“큰애도, 둘째도 음악을 너무 좋아해요. 취향도 비슷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애들도 다 좋아하고. 저도 애들한테서 새로운 음악을 많이 배우죠.”

하지만 이건 아빠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아이들과의 ‘친밀도 테스트’ 차원에서 부자(父子)가 모두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인지 물었다.

“일단 록 쪽에서는 유명한 ‘콜드 플레이’가 있고요. 특히 우리 둘째는 ‘뮤즈’랑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라는 밴드를 좋아해요. 다 우리 애들 아니었으면 몰랐을 뮤지션이죠.”

그의 입에서는 2000년대에 등장한 신예 뮤지션들의 이름이 술술 흘러나왔다. 받아 적는 기자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옆에 있던 구글코리아 직원은 “원규 님은(구글코리아에서는 서로를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른다) 출근할 때도 항상 MP3플레이어를 꼽고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그는 확실히 아이들과 ‘코드’가 통하는 친구 같은 아빠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애들은 아빠가 그러는 건(밴드를 하는 건) 주책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와이프가 워낙 쿨한 스타일이라 별말 않긴 하는데, 역시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진 않네요(웃음). (공연을) 보고 결정하겠대요.”

조 사장은 “얼마 전 멤버들과 악기가 있는 바의 무대에 올랐다가 손님이 두 명밖에 없는데도 눈앞이 하얘져 아주 망신을 당했다”며 “준비가 되면 공연도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웃었다.

“아주 오랜 시간 뒤에 현업에서 은퇴하게 되면 평소에는 여행 다니며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음악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게 제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노후예요.”

한때 집에 개인 암실을 만들었을 만큼 사진에 대한 열정도 ‘심각한’ 조 사장은 35mm 라이카부터 하셀블라드, 마미야, 리노프에 이르기까지 각종 카메라 장비를 소유하고 있는 사진 전문가이기도 하다.

“좋아하면 ‘질러’요. 일이 아닌 여가라도 관심이 가는 게 생기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몰입합니다. 그 자체가 저의 여가이자, 절 살아가게 하는 힘이에요.”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조원규 사장은

KAIST 박사… 구글코리아 첫 기술 책임 맡아

구글코리아 내 100여 명의 엔지니어(개발자)와 함께 국내 정보기술(IT) 능력을 구글의 글로벌 서비스에 접목시키는 동시에 구글의 글로벌 서비스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KAIST에서 같은 분야로 석·박사를 마친 국내파 인재. 지난해 구글코리아의 첫 기술 수장에 임명돼 화제를 낳았다.

구글코리아 사장이 되기 전에는 온라인 평판시스템 분야 벤처기업인 ‘오피니티’의 공동 창업자 겸 대표이사를 지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는 인터넷 통신회사 새롬기술을 비롯해 인터넷전화(VoIP) 업체 ‘다이얼패드 커뮤니케이션’의 공동 창업자이자 CTO로 일하며 성공적인 IT벤처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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