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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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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미(用美)주의자 이승만’ ‘자주를 외친 김구’ ‘통합의 지도자 김성수’…. 한국동양정치사상학회(회장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6일 오후 1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그 지도자들’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는 이승만 김구 김성수 김규식 신익희 이시영 서재필 조소앙 안재홍 등 건국 60주년을 맞아 1945년 광복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지도자 9명의 정치적 헌신과 행보를 조명한다.》
차 교수는 소련과의 협상을 통한 남북한 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하면서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한 미국을 돌아서게 한 일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승만은 1946년 12월 미국을 방문해 “북한에는 이미 사실상의 정부가 수립됐기 때문에 남한도 그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승만은 이듬해 귀국한 뒤에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이승만이 1946년 6월 ‘정읍 발언’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론을 내놓기 전에 북한에서는 이미 김일성이 스탈린의 지시로 북한만의 정부 수립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1993년 옛 소련의 문건으로 확인됐다.
차 교수는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포기하면서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을 결과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결국 이승만이 미국을 주도한 격”이었다고 평가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대한민국 건국, 김구, 한국 민족주의의 문제’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민족 자주적 해결을 일관되게 추진한 김구의 자주성을 평가하는 한편 국제적인 감각과 현실성이 부족했던 점을 아쉬워했다. 김구가 국제노선을 추구하면서도 미국 및 소련과 협의를 추구한 게 아니라 당시 몰락하고 있던 중국을 우선시하는 비현실성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주와 민족 통일을 추구한 김구가 불행한 죽음과 함께 ‘남북정신’의 지도자로 남았다며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불참했지만 그의 사상은 온건한 형태로 신생 국가의 건국정신과 헌법으로 수용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김구가 정부 수립에 적극 참여했다면 이승만-김구 연합과 김일성-박헌영 연합의 대결 속에 남한은 좀 더 유연하고 국제적인 노선을 추구했을 것이며 이승만과 김구의 경쟁이 분출하는 역동성과 경쟁도 활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범(정치학)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김성수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주제의 논문에서 해방공간에서 김성수가 민족주의 진영의 통합자로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한국민주당을 이끌었던 김성수가 1946년과 1947년 두 차례에 걸쳐 김구의 한국독립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는데 이는 당 내부에서 거센 반발이 나올 정도로 조건 없는 통합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좌익에 기울어져 있던 몽양 여운형과도 친했고 공산당에서 전향한 죽산 조봉암도 포용하려 했던 인촌(김성수)은 주관이 뚜렷했지만 고집이나 아집, 편견은 없었으며 타협적이고 통합적인 지도자였다”며 “그를 반공주의자로 인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촌은 이승만의 건국 노선을 지지해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했으며 이후에는 이승만의 독재와 독선에 저항한 야당 지도자로서 전후 한국 정치에 크게 기여했다”며 “야당이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 일제강점기 인촌 사상을 ‘교육중심주의, 계몽주의, 신중론’으로 보고 “언론인과 교육자로서 독립에 기여했고 민족의 혼을 지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건국을 준비하는 준비론자의 면모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철순(정치학) 부산대 교수는 ‘김규식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논문을 통해 “김규식이 이상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남북협상에 참여하면서도 북한에 신중하게 접근한 것을 보면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김용달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신익희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논문에서 임시정부 활동부터 5·10선거 참여까지의 신익희를 분석해 “독립운동과 건국 노선에 유연하게 참여했던 지도자”라고 말했다.
김희곤(사학) 안동대 교수는 ‘이시영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통해 “그는 조직도 계보도 없이 도덕적인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세워 가려 했다”고 밝혔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서재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84세의 고령으로 귀국해 1년 2개월 동안 활동한 그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최후의 봉사를 했다”고 평가했다.
김기승 순천향대 인문과학대 학장은 ‘조소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5·10선거에는 불참했지만 선거를 통해 제정된 헌법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야당 지도자로 활동한 그의 일관된 논리는 민주주의와 독립운동이었다”고 말했다.
김인식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안재홍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안재홍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중간우파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한 현실주의자로 평가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