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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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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인 그는 “시 해설을 하고 평론집을 내도 꿈은 늘 시집에 있는 것 같다.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하지만 시집을 낼 때가 가장 행복하고 든든하다”며 “이번 시집은 지금 여기의 삶을 묶어두는 ‘중력’과 여기를 넘어서는 ‘부력’ 두 개념 사이에서 파도타기 하듯 썼다. 전작들이 중력에 가까웠다면 이번엔 부력이 들어오면서 경쾌하고 리듬감이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다채로운 일상 주제 자유롭게 오가
바람, 장다리꽃, 잎맥의 숨소리, 당신의 새벽노래를 베껴 쓰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되겠다(‘불멸의 표절’)고 선포하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이런 유쾌하고 자유로운 갈망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의 시들은 꽃과 별, 딸과 아버지, 남편과 아내, 시간과 사랑, 이웃과 일상의 다채로운 주제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설렁탕 집에서 만난 남녀의 엇갈린 로맨스(‘설렁탕과 로맨스’)를 안타까워하다 집회가 열린 태평로 한복판으로 나가 헤매기도 하며(‘또다시 네거리에서’), 시각장애인 아버지가 정신지체장애 아들을 끈으로 동여매고 우유배달을 하는 모습(‘걷는다’)을 물끄러미 응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가지각색의 시들은 뜨뜻하게 치받치는 슬픔의 길목을 지나 가슴 찡한 연민과 따스함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학교와 산 나무, 눈부신 노을의 세상을 처음 만났던 어릴 적 꿈을 꾸고 눈물 흘리는 엄마를 일곱 살 딸애가 ‘새우깡 냄새 풍기는’ 손으로 다독이는 것(‘내 처음 아이’), 서로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잠든 가족이 한 팔로 제 몸을 지탱하고 다른 팔로 가족의 몸을 받아내느라 느끼는 저림(‘저린 사랑’)이 곧 사랑임을 시인은 말해준다.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한생을 뿌리고 거두어/벌린 입에/거룩한 밥이 되어 준다는 것, 그것은//사랑한다는 말 대신’(‘세상의 등뼈’)
○ 부사 어감 살린 시어 두드러져
표제작 ‘와락’부터 부사의 말맛을 살린 시어들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번 시집의 특색이다. ‘아슬아슬’ ‘시시각각’처럼 제목 자체가 부사이기도 하고 ‘앗 시리아 저 별’ ‘웅크레주름구릉’처럼 부사적 언어를 조합해 단어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했다.
이런 언어 사용이 “단순한 말놀이가 아니라 본질에 가까운 삶의 언어들”이라고 정의한 정 시인은 “우리말의 결, 무늬를 다채롭게 살려서 단어 하나에 시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아도 시간, 장소 너머의 의미를 끌어올 수 있는 부사라는 언어 형식이 좋았다”는 시인 말처럼 슬픔과 위로를 넘나드는 그의 시들도 그렇게 ‘와락’ 다가온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