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5년 모딜리아니 노벨경제학상

  • 입력 2008년 10월 15일 02시 57분


“10월 15일 아침 전화기를 든 순간부터 내 인생은 기적같이 달라졌고, 그때부터 저는 들뜬 상태로 지내왔습니다. (중략) 앞으로 노벨상을 받을 사람들에게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운명적인 전화’를 받기 전에 옷을 제대로 차려입을 것, 둘째는 옷을 입기 전에 수상 소감부터 써두라는 겁니다.”

198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코 모딜리아니가 그해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 만찬에서 한 연설이다. 이미 67세의 노학자였지만 큰 상을 받는 기쁨과 떨림은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22만5000달러의 노벨상 상금을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딜리아니는 1918년 이탈리아 로마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성만 같을 뿐 관계가 없는 인물.

그가 로마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당시 유럽은 파시즘의 광기로 뒤덮여 있었다. 1938년 그는 무솔리니의 반유대인 정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1939년 약혼자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신사회연구학교에서 1944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리노이대 등을 거쳐 1962년 이후 줄곧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연구했다. 2003년 9월 노환으로 타계했다.

노벨상을 받은 그의 대표적 공적은 1954년 ‘생애주기(라이프사이클) 가설’을 고안한 것. 모딜리아니는 한 개인의 소비가 전 생애에 걸쳐 일정하거나 서서히 증가하지만 소득은 중년 때 가장 높고, 유년과 노년기에는 낮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때문에 저축률은 중년에 가장 높고 노년 때는 낮거나, 저축을 까먹는 ‘마이너스 저축’을 하게 된다.

젊을 때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요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 하지만 이 가설 이전에는 ‘소득의 크기가 소비와 저축을 결정한다’는 케인스의 ‘절대소득 가설’이 통용됐다.

모딜리아니의 가설은 젊은 세대가 많은 사회와 노인이 많은 사회의 저축률이 왜 다른지를 설명할 수 있었고, 연금이 장래에 어떤 효과를 낼지 예측하는 데도 유용했다. 보험설계사들이 활용하는 ‘라이프사이클 모델’의 원형도 여기서 나왔다. 모딜리아니는 현대 재무이론을 정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 모딜리아니는 케인스주의자였다. 정부 개입 없는 시장을 이상적으로 본 밀턴 프리드먼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학문적으로 모딜리아니의 조카뻘쯤 되는 ‘뉴케인스주의자’로 분류된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는 학파. 이 때문에 신고전학파를 선호하던 노벨 경제학상마저 금융위기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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