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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9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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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드라마의 원작자인 만화 ‘바람의 나라’의 작가 김진(48) 씨를 서울 강남의 화실에서 만났다. 원작은 1992년 연재를 시작해 2008년 현재 총 25권이 발간되었고 게임, 소설,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된 바 있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2008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대상’에서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받았다.
무덤 속 ‘위대한 전쟁의 신(大武神)’을 현대로 불러온 작가는 부분 염색한 머리에 온화한 인상을 한 여성이었다. 그는 창작 활동을 일종의 ‘굿’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화두가 생겼습니다. 뭔가 이야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니까 계속 찾았습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확실하게 만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는 만화가 제 마음을 담아 두기에 가장 좋은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을 나와 섞어 그립니다. 대무신왕을 그리고 있으나 나를 그리고 있는 셈이죠. 연극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의 여러 개의 자아를 뽑아 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굿 한다’고 하죠. 모든 작품은 작가 자신을 굿하는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일도 그랬다. 2004년 작가는 직접 ‘바람의 나라’ 소설을 집필했다. 자꾸 마음속 유리왕이 나타나 ‘굿을 해라~’고 명령했단다. 만화에서는 유리왕도 앞부분에서 약하게 다뤘다. 풀어야 했다.
“출판사에서 소설을 출판하고 싶다고 하자 그렇다면 내가 쓰겠다고 해서 썼습니다. 그 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나를 집어넣어서 굿했습니다. 표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굿을 해야죠.”
“드라마 역사 기록을 충실히 따랐으면”
방영중인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기자는 고등학생 시절 바람의 나라 만화를 보고 자랐다. 농담 삼아 좋아하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이미지가 원작과 달라 조금 섭섭했다고 말했다. 그는 “할 말은 많은데 끝이 나 봐야 아는 것이고 아직 진행 중이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인터뷰가 무르익었을 즈음 작가는 “드라마가 되도록이면 있는 기록을 충실히 따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는 기록되는 달리 출생의 비밀을 안고 궁에서 버려진 대무신왕이 이곳저곳 유랑하다가 왕이 된다.
“저는 대무신왕의 기록을 의심하지 않고 봤습니다. 삼국사기에서 10살 때 전장에 나가 싸웠다면 그렇다고 생각했고 7살 때 부여에서 온 사신과 ‘누란지위(累卵之危)’를 논했다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옛날 왕자라면 또 그 정도의 교육을 받습니다. 대무신왕은 쓰는 단어 단어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말 타는 기상도 좋지만 고구려 시대의 지적인 우아함 역시 동시대 중국 왕조 못지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도 드라마에서 표현해 주었다면 좋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는 또한 “대무신왕을 왜 굳이 대무신태왕(大武神太王)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싫어하지만, 고구려왕이 왜 굳이 황제가 돼야 합니까. 황제라는 말도 중국의 진 시황제(秦始皇帝)가 제일 먼저 쓴 말이 아닙니까.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비에서는 대무신왕을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라고 표기해 놓았어요. 태왕이나 황제니 하면서 너무 남의 나라를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구려도 처음에는 약했어요. 못 살았어도 우리고 잘 살았어도 우리입니다. 국력이 약했을 때도 국력이 창성했을 때처럼 역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매체 달라져도 원작 큰 줄기 바뀌지 말아야”
바람의 나라는 만화에서 게임, 소설, 뮤지컬, 드라마로 변신을 거듭했다. 작가는 “제일 중요한 것은 줄기”라고 강조했다.
“가지는 다 바꿔도 됩니다. 이 매체에서 저 매체로 갈 때 연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감안은 합니다. 그러나 줄기가 바뀌게 되면 그것은 다른 겁니다. 기둥을 바꾸고 이파리만 비슷하다고 매체 접목에 성공했다고 할 순 없겠지요. 아직 과도기라 그렇겠지만 앞으로는 좀더 신중하게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주로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 ‘가족간의 오해와 사랑’ 같은 주제가 많다. 대무신왕 무휼은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국인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버지 유리왕의 운명을 답습하게 된다.
“운명은 도리 없이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람의 나라’가 역사서를 기초로 해서 역사의 거스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 질 수는 있겠지요. 가족간의 애증 문제를 다루는 것은 원래 가족은 자기가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벽을 넘어서 성장해 나가고 결과적으로 부모와 화해를 하면서 구세대가 됩니다. 저의 주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그에게 ‘무휼은 왕인데 수염이 없다’고 지적하자, “예쁜 게 낫지, 왜 역사물이라고 다 수염을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그림이나 고구려 벽화를 봐도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남자는 많지 않다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은 원래 예쁜 걸 좋아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만화 ‘바람의 나라’ 마무리로 진행 중
그는 ‘바람의 나라’가 3/4 정도 진행됐으며 마무리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결론은 16년 전 그대로 머리 속에 담겨 있다면서. 미완인 몇몇 작품들도 머리 속에서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에게 애니메이션 등 만화 외에 또 다른 구상이 더 있는지 물었다.
“작품과 관련해 애니메이션 말도 오고 다 왔지만 그렇다고 다 하는 건 아니죠. 만화의 최고 장점은 글과 그림과 연출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캐릭터가 있어 자기 배우를 데리고 자기 카메라로 자기가 세팅한 무대에서 혼자 만들어내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이죠. 현재로선 만화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쪽에 고개를 돌리지 않아요.”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임광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