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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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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前 대통령 유적 편의시설 부족 외면받아
김일성 별장엔 생애 소개… “자칫 미화 우려”
이철승씨 “김 주석 별장에 한때 DJ-盧전 대통령 사진 걸어” 비판
확 트인 쪽빛바다가 펼쳐진 강원 고성군의 동해안 화진포에는 두 개의 이름난 별장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과 김일성 별장. 두 별장은 불과 1.5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2일 오후 두 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김일성 별장 앞은 대형 관광버스들이 서 있었고 적지 않은 관람객으로 붐볐지만, 이 전 대통령 별장은 승용차 몇 대만 주차되어 있을 뿐 한적하기만 했다.
이 전 대통령 별장은 1954년에 세워져 1960년까지 사용됐다. 1961년 폐허가 됐다가 1999년 이 전 대통령의 삶과 한국 근대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복원됐다. 전시관 내부엔 이 전 대통령의 삶을 보여주는 관련 사료와 사진,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집무실을 복원해 이 전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대화하는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김일성 별장은 원래 1938년 외국인 선교사들이 휴양소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물. 1945년 광복 직후 이 지역을 북한이 점유하고 있을 때에 북한의 귀빈 휴양소로 사용됐으며 1948∼1950년 김일성 주석이 부인 김정숙, 아들 김정일(현 국방위원장) 등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낸 곳이다. 별장 외관이 유럽의 성과 비슷하다고 해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별장 내부에는 김 주석의 생애, 독재체제 구축 과정과 6·25전쟁 발발 등 관련 사료와 사진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내부 전시 공간은 이 전 대통령 별장이 전시품 내용이나 전시 기법의 면에서 훨씬 흥미롭고 볼거리가 많다. 그런데도 김일성 별장에 더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것은 주차장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성수기 김일성 별장의 하루 관람객은 500여 명 선. 반면 이 전 대통령 별장 관람객은 150∼200명에 그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별장의 관리인 임희경 씨는 “김일성 별장에는 대형 주차장이 마련돼 있지만 이 전 대통령 별장에는 승용차 10여 대밖에 세울 수 없다”며 “그래서 수학여행단 등 단체관람객들이 김일성 별장에만 들르고 그냥 가버리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날 김일성 별장 앞에서 만난 관람객 김진성(36) 씨는 “김일성 별장을 보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의 별장을 보는 사람보다 많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전 대통령 별장의 관람 편의를 위해 주차 공간을 넉넉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일성 별장 전시공간의 내용물에 대해서도 관람객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김 주석의 생애를 소개해 놓은 대목이 분단을 야기하고 6·25전쟁을 일으킨 김 주석을 미화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별장을 관리하는 김응중 고성군 시설계장은 “김일성의 생애가 김일성을 미화한다는 지적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현재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체적인 전시 구성을 새롭게 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전시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노무현 정권 시절,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 사진을 김일성 별장에 전시했던 일.
현장을 살펴봤던 이철승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6·25전쟁 때 격전지였던 지역에 김일성의 별장이 있고 이곳을 마치 대단한 장소인 양 관광지처럼 꾸미고 더 나아가 한국의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전시해 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이 사진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했다. 별장을 관리하는 고성군은 6월에 이들 사진을 모두 철거했다.
광복 63주년,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아 두 별장의 기묘한 대조가 이제는 바로잡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성=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