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7년 오대양 사건 발생

  • 입력 2008년 8월 29일 03시 01분


사이비 종교의 광기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다.

그러나 사랑과 종교의 힘은 그 두려움마저 극복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의 근원은 사랑과 종교가 갖고 있는 맹목성일 것이다.

그러나 맹목성은 양 날의 칼과 같다. 그 대상이 올바르지 않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1년 전 뜨거운 여름 전 국민을 공포의 전율에 떨게 한 오대양 사건이 대표적인 극단적 사례다.

1987년 8월 29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오대양 공장에서 일하던 공원 김모 씨는 오전 11시 공장 식당으로 들어갔다 역겨운 냄새에 급히 코를 막았다.

냄새를 쫓아 식당 천장으로 올라간 김 씨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곳에는 여자 28명, 남자 2명 등 32명의 시신이 열 지어 뉘어져 있었다.

숨진 사람들은 이 회사 대표이자 사이비종교 교주인 박순자 씨와 박 씨의 두 아들, 딸, 맏동서, 조카, 회사 직원, 공장 종업원들이었다.

박 씨는 300여 명으로부터 거액의 사채를 빌려 쓴 뒤 채무자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중이었다.

숨진 사람들은 대부분 옷가지 등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목이 졸려 질식사했다.

현장검증과 시체 부검을 마친 경찰은 3일 뒤 숨진 사람들이 사이비종교의 교주인 박 씨의 자살 명령에 따라 신경안정제나 수면제 등을 먹은 뒤 혼미한 상태에서 이 공장의 공장장에 의해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박 씨의 명령에 따라 5일 동안 무더위 속에서 식당의 슬레이트 지붕 밑에 숨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탈진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던 추종자들은 교주 박 씨의 한마디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주 박 씨가 죽음을 앞둔 공포까지 없애주지는 못했다.

숨진 사람들 중 일부의 옷에서 발견된 종이쪽지들에는 죽기 직전 쓴 것으로 보이는 ‘사장이 독약과 물을 가지러 갔다’ ‘상우도 무척 고통을 받고 있다’ ‘영현이가 꿈을 꾸고 있는데 그곳이 지옥이라고’ ‘남자들은 다 잡혀가고 여자들은 헤어지고’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