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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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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게 당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1949년 당시 황푸군관학교 학생은 누구나 그랬다. 국민당의 타락에 염증을 느끼고 인민해방군에 투항했다. 그리고 1951년. 초급장교 유유안은 180사단과 함께 얄루강(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향한다.
상황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무기도 체계도 없었다. 보병이 ‘총알받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군화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상부 명령도 오락가락. 전투에서 패하고 뿔뿔이 흩어진 군대. 살기 위해 숨고 도망치던 유유안은 어느 날 폭격에 정신을 잃는다. 깨어났을 땐…, 그는 이미 ‘전쟁포로’였다.
펜 헤밍웨이 문학상(1996년),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문학상(1997년), 전미 도서상(1999년), 펜 포크너상(2000년, 2004년) 수상. 미국 내 최고 지성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중국계 소설가 하진(51·보스턴대 영문학 교수). 2004년 펜 포크너 수상작이자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던 그의 대표작 ‘전쟁 쓰레기’가 국내 출간됐다.
미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부터 국내에서도 화제였다. 6·25전쟁 당시 거제도 부산에 있던 포로수용소가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작가가 실제로 전쟁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서문에서 밝혔듯 “중국 만주에서 자라면서 군인으로 옌볜 한국인 마을에서 반년 정도 거주한 경험”을 활용했다. 한국에 관한 묘사나 표현이 적확한 게 많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유유안. 그에겐 육체적 고통이나 배고픔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 기다렸다. 중국군이었으니 국민당 세력, 미군에게 핍박받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당원이 아닌 탓―사회주의를 지지함에도―에 공산당 출신에게서도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다. 도와주는 이도 있었고 고마운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가 줄곧 선택을 강요받았던 ‘본토와 대만.’ 그 극간만큼 유유안은 휩쓸리고 상처받고 무너진다.
“그해 여름 나는 우리 수용소를 배회하고 다니는 검정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 우리 전쟁포로들 중 아무도 개가 느끼는 단순한 즐거움과 사람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는 내가 당혹스러움과 배반에 대한 두려움 대문에 주변 사람들을 향해 감히 느끼지 못하는 부드러운 감정을 내 안에서 불러일으켰다.”
‘전쟁 쓰레기’는 중국인 시각에서 본 전쟁포로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 독자로서 익숙하긴 해도 ‘우리’ 이야기는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그건 이 소설의 장점도 된다. 흔치 않은, 6·25전쟁을 한발쯤 물러나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니까. 그 속에는 개인에게 전쟁이 주는 허망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거울이 걸려 있다. 다만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 이제야 국내 독자들의 손에 오게 된 것이 아쉽다. 원제 ‘War Trash’(2004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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