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연기의 神, 고뇌의 人間

  • 입력 2008년 7월 12일 03시 00분


◇로런스 올리비에/테리 콜먼 지음·최일성 옮김/851쪽·3만2000원·을유문화사

“그는 풍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활기차고 용감한 개성을 지닌 연기자로서 관리자로서 감독으로서 보여준 비범한 재능과 찬란한 업적뿐 아니라 섬광 같은 도전정신, 어떤 새로운 것이나 어려운 문제에 접근하는 기본자세, 모두 우리가 받은 유산입니다.”(배우 존 길구드)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

귀족 작위까지 받은 20세기의 위대한 배우. 영화 ‘햄릿’ ‘리처드 3세’를 비롯한 셰익스피어 연기의 대가.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비비언 리의 남편.

올리비에는 접근하기 어렵다. 이견을 다는 것도 쉽지 않다. 생전에 배우 이상의 대접을 받았고 동시대 배우들도 경배했다.

“(1976년) 그는 그녀(배우 세라 마일스)를 데리고 커크 더글러스, 더스틴 호프먼, 버트 랭커스터, 진 시먼스 등과 어울리는 파티에 갔다. 올리비에가 나타나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올리비에를 위대한 배우나 천재 이상으로, 아니 신 이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올리비에 평전을 테리 콜먼에게 맡긴 건 유족이었다. 저자에게 고인의 모든 자료를 제한 없이 검토할 독점권을 줬다. 거물은 거물이 상대하는 법. 유족은 ‘가디언’지 기자로 영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자 문인 중 한 명인 저자여야 올리비에의 격에 맞는다고 생각했음 직하다.

20대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스타였던 올리비에. 돈과 명예, 여인은 언제나 그를 둘러쌌다. 배우로서 평생 성실했으며, 영국 내셔널시어터 관장도 지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의 내면엔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불안과 고통’이 가득했다. 그 원인 중 하나가 비비언 리였다.

그들의 사랑은 출발부터 불안했다. 유부남 유부녀의 불륜이니.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이었다. ‘20세기 동화’라 불리는 세기의 결합이었으나, 비비언 리는 끊임없이 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기.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끔찍했다. 지금 그들은 대중의 갈채에 묶여 있고, 여러 해 전에 다 타 버린 육체적 정열의 차가운 재 속에서 헤맸다. (…) 그들은 인기와 성공을 거머쥐고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지만, 너무나 가엽게도 그들은 불행했다.”

비비언 리와 이혼한 뒤 세 번째 결혼으로 안정을 찾았으나, 올리비에는 비비언 리로 인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성애자라는 소문도 고뇌의 원흉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에의 진가는 이 모든 걸 극복하려는 지치지 않는 노력에 있었다. 어떤 영광에도 연극무대를 지켰고, 진지하고 성실했다.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에 대해 물어 왔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시도하는 거야. 그리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거야.’”

이 책은 을유문화사 시리즈 ‘현대 예술의 거장’ 18번째 권. 2002년 ‘빌 에반스’를 시작으로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올해 안에 ‘에드바르 뭉크’ ‘프랭크 시내트라’도 출간될 예정이다. 원제 ‘Olivier’(2005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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