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본래는 남의 것인데…

  • 입력 2008년 6월 28일 02시 58분


본래는 남의 것인데 어리석은 우리는 다투고 있지요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 눈먼 소녀가 살았습니다. 소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집안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홀로 된 아버지는 5년째 병석에서 자리보전하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을 끼고 살았으므로 가난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늦가을로 들어설 무렵 병석의 아버지는 생뚱맞게도 딸기가 먹고 싶다며 소녀를 들볶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계절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계절에 딸기를 구한다는 것은, 물 한 섬에 황토가 여섯 말이라는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염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소녀는 시각장애인이었으므로 누가 딸기 바구니를 손에 쥐여주지 않는 이상 딸기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르던 소녀에게 한 가지 계책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소녀는 그날부터 몇 달 동안 오직 기도에만 열중했습니다.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몽환적 경계까지 넘나들며 오직 기도만 했습니다. 소녀의 효심과 기도에 감복한 하느님은 어느 날 새벽 소녀의 집 뒤뜰에 한 바구니의 딸기를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진정성을 바친 하느님과의 소통에서 얻어낸 눈부신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애석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은 그 소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소녀의 집 뒤뜰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소녀가 살고 있는 마을 들머리에 있는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살던 황새 한 마리가 소녀의 집 뒤뜰에 임자 없이 방치되어 있는 딸기 바구니를 발견한 것입니다.

황새는 몰래 뒤뜰로 내려앉아 바구니의 손잡이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리에 손상을 입고 모가지가 부러져라 하고 잡아당겨도 딸기 바구니는 쇠망치로 박아 놓은 것처럼 꿈쩍도 않았습니다.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펴본 황새는 그제야 딸기 바구니를 발견한 것은 자신이 처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뒤뜰 감나무 아래에 살고 있던 청서 한 마리가 남 먼저 딸기 바구니를 발견하고 달려와 반대편으로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황새와 청서가 서로 핏대를 곤두세우며 다투고 있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다른 짐승들이 눈치 채고 앞 다투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은총이 담겨 있는 바구니를 잡아당기며 저마다 소유권을 주장하며 두 눈을 부라립니다.

그처럼 피비린내 나는 쟁탈전이 벌어진 지 보름이나 지났습니다만, 바구니는 본래 놓인 자리에서 단 한 뼘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보름이 흘러간 뒤 바구니 속의 딸기는 부패하고 말라비틀어져서 과일로서의 모습과 값어치를 잃고 한낱 쓰레기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짐승들의 쟁탈전은 그때까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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