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혹은 6조각 퍼즐 맞추기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하나의 큰 풍경 사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한 사람이 한 칸씩 그린 것을 잇대면 색다른 느낌의 그림이 나온다. 토드 헤인스 감독의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는 이렇게 나눠 그린 그림처럼 한 인물을 여섯 조각으로 분할해 다시 잇댄 전기(傳記)영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얘기하기에 적절한 아이디어. 소재는 미국 포크음악의 대부 밥 딜런(67)이다.》

‘I'm Not There’ 29일 개봉

美포크음악의 대부 조명

시인이자 예언자이며, 무법적이고 위선적인 연예인이고, 한때 변절자로 불린 ‘밥 딜런의 여섯 혼’이 배우 여섯 명의 몸을 빌려 그려졌다. 촬영 현장에서 서로 거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은 배우들은 딜런의 음악과 삶에 대해 각자 ‘6분의 1’ 답변을 던진다.

딜런의 여섯 조각 초상(肖像)의 잇댐은 서로 모호하게 중첩되고 어긋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딜런의 복잡한 내면이 관객에게 좀 더 풍성한 생각거리를 준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한 사람에 대해 대중이 가진 시각의 초상”이라고 말했다.

나눠 그려 잇댄 그림처럼 한 인물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담은 이 작품은 2007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을 받았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여섯 조각 ‘밥 딜런 퍼즐’을 하나씩 살펴보자. ①과 ⑥은 실존인물의 이름을 빌렸다.

① ‘위선자’ 우디 거스리

소년 밥 딜런의 모습이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믿고 허영에 젖어 자신을 거짓되게 포장하는 수다쟁이 흑인 소년. 딜런은 자서전 ‘연대기(Chronicles)’에 “어렸을 때 집에서 쫓겨나 트럭을 몰거나 건축공사장 잡역부로 일하며 여기저기를 떠돌았다”고 썼다. 젊은 시절 노동자로 방랑하다가 가난한 서민의 삶을 포크음악에 담아 읊은 가수 우디 거스리와 일치하는 경험이다.

②‘예언자’ 잭 콜린스

1962년 첫 음반을 낸 밥 딜런은 사회를 비판하는 저항음악으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곧 자신이 쓴 가사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찾는 대중에 환멸을 느낀다.

“난 내 생각을 노래한 것뿐인데 자기 생각과 비슷하니까 나를 대변자라 여기나 봐요.”

사회적 메시지를 버리고 기독교와 가스펠 음악에 몰두하는 잭 콜린스의 모습은 1970년대 후반의 딜런을 반영했다.

③‘변절자’ 주드 퀸

대중과 언론은 저항을 멈춘 밥 딜런을 맹비난했다. 포크에서 록으로 전환한 가수 주드 퀸은 “세상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 챙기라”고 하는 평론가에게 “글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음악가를 우상화한다”는 비판을 던진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는 척이오? 내게 음악은 나를 드러내는 방법일 뿐이에요.”

④‘연예인’ 로비 클락

1월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가 인기를 얻은 후 방탕한 생활에 빠져 가족을 잃는 대중스타를 연기했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년)으로 스타덤에 오른 히스 레저는 이 작품에서 만난 미셸 윌리엄스와 결혼해 딸을 얻지만 2007년 이혼했다. 헤어진 아내를 찾아가 딸을 안아주는 장면에서 밥 딜런과 히스 레저 두 남자의 삶이 묘하게 겹친다. 윌리엄스는 주드 퀸의 후원자 역으로 출연했다.

⑤‘시인’ 아서 림바우드

밥 딜런은 4월 대중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뛰어난 노랫말로 미국 문화 전반에 공헌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은둔을 원하는 시인 딜런의 대답은 냉소적이다.

“아무것도 창조하지 말 것. 반드시 왜곡돼 평생 자신을 옭아매기 때문에. 내가 고통 속에서 쓴 글로부터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다.”

⑥‘무법자’ 빌리 더 키드

“자기 자신에게조차 보이지 않게 숨고 싶은 자아”가 된 밥 딜런의 현재. 빌리 더 키드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전설적 무법자다. 딜런은 키드 이야기를 다룬 샘 페킨파 감독의 ‘관계의 종말’(1973년)에서 음악을 맡고 단역 출연도 했다. ‘관계의 종말’에서 키드 역으로 나온 배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아임 낫 데어’ 내레이션을 맡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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