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지구촌 누비며 '부루마블'을 한 형제

  • 입력 2008년 3월 6일 17시 20분


몽골 여행중의 동생 홍경선씨.
몽골 여행중의 동생 홍경선씨.
파리 여행중의 홍장선씨.
파리 여행중의 홍장선씨.
이집트 여행중의  동생 홍경선씨.
이집트 여행중의 동생 홍경선씨.
타이페이, 홍콩, 마닐라, 제주도, 싱가포르….

도시 이름을 이 같은 순서로 나열하면 198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떠오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다.

바로 1982년 '모노폴리' 게임을 모방해 국내 씨앗사에서 내놓은 보드 게임 '부루마블'이다.

부루마블은 세계 각국의 수도를 여행하며 호텔, 빌딩, 별장 등 부동산 투자를 한다는 내용의 보드게임으로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서 '중독 증상'을 일으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근 부루마블을 하며 어린시절을 보낸 한 30대 형제가 게임에 등장하는 나라들을 100여 일간에 걸쳐 직접 여행해 보고 책을 내 관심을 끌고 있다.

책을 낸 주인공은 홍장선(33·미디어&엔터테인먼트 컨설턴트), 경선(30·국순당 해외사업팀 대리) 형제. 책은 게임 이름을 따 '부루마블 세계 여행'(사진·넥서스·1만2000원)으로 이름 지었다.

이들은 부루마블에 나오는 도시들을 '옐로 블록' '블루 블록' '퍼플 블록' '레드 블록' 등으로 나눠 학창시절부터 최근까지 모두 다녀봤다.

부루마블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간 도시 외에 업무상 출장이나 여행 공모전에 당선돼 한 여행까지 합치면 그 동안 다녀본 곳은 100여 개국의 300여 도시.

이 책에서 홍씨 형제는 그 중 부루마블에 등장하는 도시들을 골라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체험한 내용을 부루마블 게임 판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담았다.

옐로 블록(14~67페이지)에는 타이베이, 홍콩, 마닐라, 싱가포르, 카이로, 이스탄불, 블루 블록(74~123페이지)에는 아테네, 코펜하겐, 스톡홀름, 취리히, 베를린, 몬트리올, 퍼플 블록(130~177페이지)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파울루, 시드니, 하와이, 리스본, 마드리드, 레드블록(184~231페이지)에는 도쿄, 파리, 로마, 런던, 뉴욕 등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옐로 블록 부분의 인도차이나 반도와 동남아시아 터키지역은 형제가 학창시절 3, 4개월간 두루 다녔다. 유럽 중심인 블루 블록 지역은 주로 배낭여행으로 다녀봤고, 퍼플 블록인 서부 유럽과 중남미 지역은 어른이 된 뒤 주로 휴가 때 다녀왔다. 레드블록을 구성하는 선진국의 대표도시들은 학창, 연수, 직장 시절 여행과 출장 등으로 각 10회 이상씩 다녀본 것.

모두 합하면 각 도시별 체류기간은 평균 3, 4일이며 도시가 속한 나라별 체류기간은 8~10일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형제의 설명이다.

홍씨 형제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에는 부모님께 손을 벌렸으나, 이후엔 각종 여행 공모전에 응모하기도 하고 관광 가이드로 활동하며 경비를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늘 궁핍한 상태에서 여행을 했다. 호텔은 꿈도 못 꿨고 주로 유스호스텔에 머물거나 돈이 없을 때는 해변이나 기차역 배 안에서 노숙하는 게 다반사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먹여주고 재워준다면 무작정 따라나섰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동생 경선 씨가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태국 칸차나부리 지역에서 겪은 일이다.

그곳에서 만난 태국 현지인이 지금까지 자신이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를 보여주며 자기 집에 함께 가자고 하자 경선 씨는 선뜻 따라 나섰다.

그 사람의 집에서 식사를 하며 맥주를 한참 동안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그가 경선 씨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부인이 술 알레르기가 있어서 내가 술만 마시면 방에서 쫓아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침대에서 같이 자자"는 그 사람을 뿌리치지 못하고 둘이 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바지 사이로 이상한 감촉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자는 줄 알았던 집 주인이 경선 씨의 몸을 애무하고 있었다는 것.

경선 씨는 "5분만 만지자"는 그를 뿌리치고 다음날 도망치듯 그 집을 떠났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고 잘 가라며 손 흔드는 그를 보고 닭살이 돋았다"는 경선 씨.

궁상맞게 세계여행을 다닌 두 형제의 꿈은 "기회가 되면 호텔에서 자면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

"초호화 크루즈선을 타고 세계 부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상류 사회의 문화도 접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선은 부모님에게 이 꿈을 양보하기로 했다.

홍씨 형제는 수 년 전부터 부모님께 '캐러비안 크루즈여행' 선물을 드리기 위해 부모님 몰래 펀드를 들고 있다.

"펀드는 우리 형제가 굴리는 두 개의 주사위에요. '퀸 엘리자베스호'에 도달하거나, '황금열쇠'에 걸려 '퀸엘리자베스 호를 타라'는 카드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굴릴 겁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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