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무거운 일상, 발랄한 불평…‘리스본행 야간열차’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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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행 야간열차/황인숙 지음/112쪽·6000원·문학과지성사

‘죽을 것같이 피곤하다고/피곤하다고/걸음, 걸음, 중얼거리다/등줄기를 한껏 펴고 다리를 쭉 뻗었다/이렇게 피곤한 채 죽으면/영원히 피곤할 것만 같아서/그것이 문득 두려워서’(‘묵지록히 눈이 올 듯한 밤’에서)

때는 겨울밤, 집 앞 골목에 이르러선 피곤에 절어든 몸이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다. 그렇지만 우아해야 한다.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도록 등을 펴고 사뿐사뿐 걷는다. 어쩌면 고양이, 어쩌면 고양이와 닮은 시인의 모습.

등단작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에서부터 알렸거니와 시인 황인숙 씨와 고양이는 불가분이다. 언어라는 게 이렇게 통통 튈 수 있다는 것을 시로 증명해 온 그. 새 시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그 발랄한 탄력은 여전하다.

고양이를 즐겨 등장시키다 보니 이제는 시인과 고양이가 ‘합체’된 듯하다. 시집의 많은 시편은 화자가 고양이인지 시인인지 모호하다. ‘넘어야 할 담도/넘고 싶은 담도 없다 (…) 땅바닥에 빗긴 금이나 (어떻게 되나 보려고)/넘어본다, 고 하지만/쿵! 아가리를 한껏 벌린 쓰레기통에도 떨어지고/고가도로 밑 복개천에도 떨어지고 (…) (좀 복이 있다면,/현재 습도 사십칠 퍼센트/낮 최고기온 이십오 도 오 부인 날/벚꽃 밑에도 떨어지고)’(‘spleen’에서)

현대인을 상징하는 듯, 화자는(또는 고양이는) 시집 대부분에서 다소 피로하다. 그렇지만 그가 속한 세상은 옹알거림, 투덜거림, 킬킬거림, 깔깔거림 같은, 마술 같은 신나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시인은 생기 있는 소란들을 옮겨 적어 독자들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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