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문학 거장들 ‘단편’을 기부하다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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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나딘 고디머 엮음/408쪽·1만2000원·민음사

멋진 선물이 왔다. 쟁쟁한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나딘 고디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귄터 그라스, 오에 겐자부로, 수전 손택, 미셸 투르니에 등 그야말로 ‘문학의 천상에서 최고를 가려보는 재미가 쏠쏠한’(가디언) 작품집이다.

작품을 모으는 데 나선 주인공은 199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고디머. “음악가들이 자선공연을 하는 것처럼 우리 작가들 역시 이 세상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그는 세계의 작가들에게 자선 작품집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고디머의 편지를 받은 작가 모두가 자기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단편을 골라 원고료나 저작권료 없이 보내준다. 이렇게 해서 2004년, 작가 21명에게서 ‘기부받은’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나왔으며 수익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이즈 구호단체인 TAC에 기부됐다.

한국어판의 수익금 역시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 해외 작가의 단편집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만큼 책의 이야기들은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흥미롭게도 작가 대부분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골랐다. 왜 이렇게 어두운 주제를 ‘기부’했을까? 소설에서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성찰은 역설적으로 삶의 소중함을 일러준다. ‘토끼’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작가 존 업다이크의 ‘죽음을 향한 여정’은 세심하다. 마틴은 전처의 대학동창 알린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복잡하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배반당한’ 알린은 가벼운 작별인사 키스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힘겨워한다. 서로 이혼해서 혼자가 된 처지인 데다 근처에 살고 해서 마틴은 종종 알린의 병 수발을 들지만, 알린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지할까 은근히 걱정도 된다. 죽음과 직접 맞닥뜨리지 못하는 사내의 미묘한 심정은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공감하게 된다.

마르케스의 ‘사랑보다 위대한 죽음’에서 오네시모 산체스 의원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터다. 살날이 6개월 정도 남았다는 소식에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허무를 느낀다. 그런데도 사랑에 대한 욕망은 놀랍도록 강한 것이어서, 그는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도 우연히 만난 열아홉 살 처녀에게 반해 그녀를 기꺼이 품에 안는다. 마르케스 특유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화려한 문체도, 이중적 인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찌르는’ 스타일도, 여전히 빛나는 단편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좀 더 희망적이다. ‘이 땅에 버려진 아이들’의 배경은 백부의 장례식장이며 이곳에서 할머니와 손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버려진 아기’라는 음악에 관한 것이다.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곳에서, 버려진 아기라는 음울한 제목에 관한 대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극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듯하다. 그런데 작가는 이 제목에 문학적 의미를 덧입혀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 놓는다. “아마도 네 아버지가 언젠가 우리 모두 행성 사이에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그리고 문학이, 예술이 할 일은 그 ‘버려진 아이들을 구해내는 것’이라고 작가는 암시한다.

내전으로 고국 모잠비크를 떠나야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디머의 ‘최고의 사파리’를 읽으며 안타까움을 느끼다가, 아이를 최고 유치원에 보내려다 몰락해 버린 가족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낸 우디 앨런(감독이자 배우)의 ‘불합격’을 읽으면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수다쟁이 당나귀가 예수 탄생의 밤 풍경을 들려주는 투르니에의 ‘당나귀와 황소’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제격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오락거리인 ‘이야기하기’라는 마술을 통해 풍성한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고디머) 책.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기쁨뿐 아니라 이야기를 쓰고 읽는 행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분명 마법 같은 일이다. 원제 ‘Telling Tales’.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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