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일상을 만날 때]소녀, 그 사연을 상상하다 시인이 됐다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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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동경의 오브제였다. 이층 양옥집의 레이스 커튼이 달린 방에서, 분홍 원피스를 입은 소녀들은 피아노를 쳤다. 그것은 가보고 싶은 대도시, 내가 갖지 못한 부유한 아버지를 상징했다. 은희경 씨의 중편 ‘누가 꽃피는 봄날 리기다소나무숲에 덫을 놓았을까’(소설집 ‘상속’에서)의 소라처럼.

‘저녁이 되어 대문 앞에 노란빛 외등이 켜지면 간간이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소라는 그 집의 외동딸이었다. 소풍날에나 신어 보는 양말을 소라는 사계절 내내 벗은 적이 없었고 많은 시간을 들여 손질해 줘야 하는 땋거나 꼬아 올린 머리에 리본을 달았다.’

교육에 열성인 어머니를 둔 덕분에 은 씨도 피아노를 배웠다. 길 가던 남학생들이 피아노 소리에 걸음을 멈출 만큼 재주 있었던 소녀는 그러나 무대공포증이 심했다. 학예회 무대에 서기 전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힘들어, 무대에 오르지 않는 직업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피아노는 교양의 오브제가 됐다. 소녀들을 피아노 학원으로 보내는 엄마들의 얼굴엔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흘렀다. 김애란 씨의 단편 ‘도도한 생활’(소설집 ‘침이 고인다’에서)에서 만두집을 하는 엄마도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풍문’에 따라 피아노 학원에 딸을 보낸다. ‘나는 헨델이 없는 헨델의 방에서 음악을 했고, 엄마는 베토벤같이 풀린 파마머리를 한 채 귀머거리처럼 만두를 빚었다.’

충남 서산의 한갓진 마을에 살던 김 씨의 어머니도 초등학교 2학년 쌍둥이 딸들(김 씨는 쌍둥이다)을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김 씨는 체르니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다음 단계인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로 넘어간다. 중학교 때 악기반에서 클라리넷을 했는데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볼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괴로워하다가, 마우스피스를 깨먹은 김에 그만뒀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소녀도 있다. 피아노 선생님은 손목이 밑으로 처지면 안 된다며 손목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았다가 그게 떨어지면 손목을 때렸다. 그렇지만 가정 있는 선생님이 총각 조율사와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꿈을 바꿔야 했다. 그 소녀가 시인 김민정 씨. 그 당혹스러운 명랑함이 가득 밴 ‘詩, 雜이라는 이름의 폴더’(본인은 시론이라지만 거의 시로 읽힌다)의 몇 구절.

‘아줌마들이 끌끌 혀를 차든 말든 엄마가 새 레슨 선생님 구하려고 전화를 걸든 말든 내 꿈속에서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앉아 달을 쪼개 먹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언젠가 선생님이 립스틱을 바르다 말고 창에 썼던 사랑은 핑크였으나… 달을 삼켜 밤을 이끈 그들의 부재 속에서 일찌감치 나는 그 말이 깜깜임을 알았다.’

흰 건반과 검은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뛰놀리던 그 소녀들은 어떻게 됐을까. 골방에서 틀어박혀 할 수 있는 일을 갖겠다고 다짐한 소녀, 풍문을 따라 자라다 대학 원서를 쓰는 자리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오래된 생각을 떠올린 소녀, 피아노 선생님의 야반도주를 두고 상상을 부풀리며 글로 옮겨 보던 소녀…. 그때 그 소녀들은 지금 키보드를 두드려 흰 모니터 위에 검은 글자를 박아 넣는 작가가 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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