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제목 낯선 매력… 佛소설의 재발견

  • 입력 2007년 11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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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교보문고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0위권 순위에 낯선 이름이 눈에 띈다. 프랑스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38)의 ‘고슴도치의 우아함’. 무식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지적인 54세 수위 아줌마 르네와 천재적 지능을 가졌지만 생의 무의미함에 환멸을 느끼는 13세 소녀 팔로마의 일상의 기록이 교차해 전개되는 이야기다.

‘고슴도치…’는 8월 말 나온 뒤 10위 이내에 석 달째 머물며 7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이 순위를 다투는 10위권 내 작가들은 파울로 코엘류, 베르나르 베르베르, 에쿠니 가오리 등 스타들이다. 이에 비해 바르베리는 국내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데다 대중적 흡인력이 높지 않은 프랑스 작가여서 ‘고슴도치’의 선전은 이변으로 꼽힌다.

○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

‘고슴도치…’는 프랑스에서 지난해 출간 이래 10월까지 6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성공을 거둔 작품. 그렇지만 국내 신생 출판사인 ‘아르테’가 이 책의 번역 출간을 검토할 때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해외 베스트셀러가 국내에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현대 프랑스 소설은 서사보다 내면 묘사가 강하고 사색적이어서 읽는 데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품당 평균 판매 부수도 3000∼5000부다. ‘영화든 소설이든 프랑스산(産)은 예술가들만의 것’이라는 편견의 벽을 ‘고슴도치…’는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가뿐하게 넘어섰다. 별난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든 독자들이 빠르게 입소문을 내면서 판매는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독특한 내용으로 손을 뗄 수가 없다’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책’이라는 독자 리뷰가 잇달았다.

○ “난해하지만 재미있다”

독자 리뷰를 보면 일관된 내용이 있다. ‘난해하지만 재미있다’는 것. 독자들은 이 책이 술술 읽히는 게 아니라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문화와 예술, 철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요구한다는 것. 그렇지만 ‘매력적인 인물들과 산뜻한 구성, 읽어 나갈수록 따뜻해지는 감동’이 있어 책을 놓지 않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출판평론가 한미화 씨는 “일본 소설의 열풍이 지난 뒤 독자들이 프랑스 소설의 낯선 매력에 끌리는 분위기인 데다 특히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을 주는 결말은 ‘베스트셀러 코드’”라고 말했다.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세상을 향해 각을 세우고 내면을 감추려는 인물들에 대해 연민과 공감을 느꼈다는 독자도 많다. 캐릭터가 잘 구현됐다는 얘기다. 프랑스 르몽드지도 ‘소피의 세계’와 다니엘 페나크(올해 르노도상 수상자)의 주인공이 뒤섞인 듯하다’며 인물 묘사에 주목했다.

○ 관습에서 자유로워진 유럽문학

지난 10여 년간 유럽 문학은 영미권의 대중소설에 밀려 왔으나 최근 2, 3년 사이에 변화가 일고 있다. 자국의 작품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는 것. ‘고슴도치…’는 이런 추세에 맞춰 ‘프랑스 출판계 10년 만의 이변’으로 꼽히고 있다. 독일에서 70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한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는 자국에서 ‘다빈치 코드’와 ‘해리 포터’를 제친 작품이다. 해마다 부커상 수상 후보로 꼽히는 제이디 스미스도 ‘미에 대하여’ ‘화이트피스’ 등이 영국 내에서 독자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장은수 씨는 “순문학이 상업문학에 밀리는 게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최근 유럽 순문학의 새 기수들이 떠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 새로운 작가의 공통점은 관습에서 자유롭다는 것. 자국의 문학적 전통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면서 소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고 독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서사를 구축하는 데 힘쓴다는 것이다. ‘고슴도치…’가 프랑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뜨거운 호응을 얻는 것은 이런 ‘변화’에 독자들이 반응한 결과라는 게 출판계의 평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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