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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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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鄭(정)나라의 子産(자산)은 재상이었다. ‘左傳(좌전)’이란 역사책에는 그가 言路(언로)를 열고 輿論(여론)을 청취한 사적을 기록해 놓았다. 唐(당)나라 韓愈(한유)는 그를 칭송하였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자산이 집정 초기에 鄕校(향교)에 갔을 때 여러 사람이 정치에 대해 분분히 떠들어댔다. 그러자 옆에서 향교를 폐쇄하면 비방하는 말이 없어지리라고 했다. 그러나 자산은 “그들의 말이 옳으면 따라 행하고 옳지 않으면 피하겠다”며 “시내는 막아서는 안 되고, 언론은 제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결국 향교는 폐쇄되지 않았고 나라는 잘 다스려졌다. 나라가 태평하지 못한 것은 신하다운 신하가 없어서이다. 자산의 조치를 본받는다면 어려운 때를 만나도 온 나라가 교화되리라.
언론을 막지 말아야 함은 예로부터 줄곧 강조됐다. 그것은 그런 시도가 끊임없이 진행됐음을 입증하기도 한다. 관련된 대립이 첨예하다면 그것은 막으려는 말과 하려는 말이 더욱 많음을 반영한다. 그리고 늘 막으려는 측의 시도가 떳떳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오늘날 우리의 경우는 어떠할까? ‘子産不毁鄕校頌(자산불훼향교송)’에 보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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