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 문학동네 ‘샘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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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의 일이다. 하루 수십 개씩 넘쳐나는 보도자료. 웬 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 하얀 편지 봉투에 담긴 진짜 편지. 그것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출판사 사장이 직접 썼다.

수상히 여긴 건 혼자가 아니었다. 문학을 오래 담당해 온 선배 기자도 “대표가 이러는 건 처음 보네”라는 반응. ‘새로운 홍보 전략인가’라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런데 그 편지, ‘장난’이 아니었다. 진지하고 절절하다. 특히 눈길을 잡는 대목, ‘내 아이에게 세상에 꼭 한 권의 책만 권하라면 이 책을 뽑겠습니다.’ 그게 ‘샘에게 보내는 편지’다. 출판사도 메이저로 손꼽히는 ‘문학동네’가 말이다.

그 편지의 주인공, 강태형 대표를 만난 건 며칠 뒤였다. 몇 순배 술이 돌고 바로 물었다. “진짜 꼭 한 권이 이 책입니까.” 권투선수 출신인 강 대표,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 내기 전에 비매품으로 2000부 찍었습니다. 지인과 도서관, 꼭 읽어 줬으면 싶은 분들에게 보냈어요. 책장사도 장사지만 (이 책은) 안 팔려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느낀 감동과 애착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나 대표의 바람(?)과 달리 ‘샘에게…’는 잘 나간다. 지난해 10일 출시돼 판매부수 5만 부가 넘었다. 에세이로선 빠른 속도다. 대표의 확신과 달리, 걱정이 앞섰던 편집팀도 꽤나 안도했단다.

‘샘에게…’는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고틀립이 손자 샘에게 쓴 편지 모음집이다. 고틀립은 사연이 깊다. 서른셋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와 우울증, 이혼도 겪었다. 둘째딸이 낳은 손자 샘은 오랜만에 비친 삶의 서광. 그런 샘이 ‘전반적 발달장애’ 판정을 받는다. 자폐아다.

안타깝지만 여전히 고틀립에게 손자는 소중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전해줄 방법도, 시간도 많지 않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언젠가 이 책을 펴들고 읽게 될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원작의 부제는 ‘사랑, 상실, 그리고 삶이 주는 선물에 대한 할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사실 책은 좀 심심하다. 대단한 우화나 에피소드, 쫄깃한 문장도 없다. 그저 자신이 겪은 삶의 일상을 손자에게 들려준다. 가족에게 쓰는 편지, 딱 그 수준이다. 우거지 된장국 같다.

그런데 그게 “영혼을 울린다”.(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베티 윌리엄스) 부풀리거나 미화하지 않아서 울린다. ‘할아버지는 몸에, 너는 마음에 사고를 당했지만 영혼이 다친 건 아니란다.’ ‘몸의 상처처럼 맘의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건 다 우리 몸속에 있다.’ ‘모른다고 말하렴. 그게 멋진 시작이 될 수 있다.’

책에는 향기가 있다. 책의 무게가 몇 그램이 아니듯 향기도 그저 종이 냄새가 아니다. 뭉클한 대목, 읽던 책을 멈추고 살짝 코를 묻어본다. 전화비 많이 나오니 얼른 끊으라면서도 밥은 잘 먹는지 챙기시던 할머니. 이 책은 그 시골 메주 냄새가 난다. ‘샘에게…’란 된장국은 ‘진정성’이란 메주에서 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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