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울고 사랑에 울고…꿈을 좇다 스러진 그녀들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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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임에서 신정아까지

《스캔들. 그 속에는 시대의 자화상이 있다.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고, 권력이 있다. 아름답든 추하든 사랑이, 삶이 농밀하게 엮여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현대사 격동의 60여 년 동안 세상을 뒤흔들었던 굵직한 여성 스캔들이 주기적으로 터져 나왔다. 광복 직후인 1940년대 말의 ‘여간첩 김수임’, 1970년대 권부(權府)의 은밀한 유혹 ‘정인숙’, 1980년대의 ‘큰손’ 장영자,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을 유행시킨 1990년대의 ‘린다 김’, 그리고 2000년대 신정아까지…. 미인과 권력을 쥔 남자, 그리고 돈이 뒤따랐던 대형 스캔들을 세밀히 살펴보면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모두 그 시대의 산물이란 점이다.》

김수임 - 美대령과 동거하며 北연인에 정보넘겨

○ 광복직후 여간첩 김수임

성명: 김수임, 죄목: 국방경비법 등 19개 조항 위반, 판결: 사형.

해방공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간첩 김수임’은 6·25전쟁 발발을 9일 앞둔 1950년 6월 16일 다섯 발의 총탄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나이 39세. 북조선인민위원회 외무국장을 지낸 이강국을 사랑했고 미8군 사령부 헌병감이었던 군정의 실세 베어드 대령과 동거했던 김수임은 베어드 대령에게서 빼낸 고급 군사 정보를 이강국에게 넘겨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판 마타하리 김수임’에 관한 역사는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억울한 죽음’ 쪽으로 수정되고 있다. 특히 군사재판 시작 사흘 만에 내려진 사형 판결, 김수임의 간첩 행위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베어드 대령에 대한 무혐의 처분 등이 이데올로기의 시대, 분단의 시대를 위태롭게 살았던 그녀를 재조명하게 하는 실마리가 된다. 얼굴이 희고 훤칠했던 경성제국대 출신 이강국과, 이화여전을 졸업한 신여성 김수임. 그녀의 죄는 혹시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목숨 던져 사랑했던 이강국도 5년 뒤 북한 땅에서 박헌영과 함께 간첩죄로 사형됐다.

정인숙 - 의문의 권총피살… “누가 쐈나” 발칵

○ 1970년 비명에 간 정인숙

“권력자들의 품을 전전하던 동생의 추한 모습을 참지 못했다.”(오빠 정종욱의 경찰 진술)

1970년 3월 17일 오후 11시경 서울 한강변에서 미모의 여인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의 수첩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정일권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고관대작 27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고 “누가 진짜 그녀를 쐈나” “아들 성일 군의 아버지는 누구냐”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인숙의 수첩에 오르지 못하면 고관도 아니다’ ‘성일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유행어가 나돌았다. 5·16쿠데타로 집권했던 박정희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고 낮과 밤, 앞과 뒤가 다른 군사정권의 이중성이 대중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사건 현장이 목격된 지 2시간 만에 현장이 치워졌고 오빠가 사용했다는 권총조차 발견되지 않은 채 ‘정인숙’이란 이름 석 자는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돼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오빠는 출감 후 “나는 인숙이를 죽이지 않았고 성일이는 정일권 씨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장영자 - 3번의 사기… 80년대 경제계 쥐락펴락

○ 1980년대 ‘큰손’ 장영자

사기→출소→사기→출소→사기→출소.

1980년대를 뒤흔들었던 ‘장영자 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사건’의 장영자는 고도성장으로 갑자기 외형이 커진, 한국 경제의 허점을 정확히 꿰뚫었던 ‘큰손’이었다. 1982년 사건 당시 그녀가 유통시킨 어음은 6400억 원, 사기로 벌어들인 돈만 1400억 원. 관련 구속자 수만 32명.

간 큰 사기꾼마저 손들게 만들었던 그녀의 사기 방식은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돈을 대고 그 액수의 2∼9배에 이르는 어음을 받아 이를 유통시키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장 씨의 전주(錢主)가 된 은행장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1992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녀는 1994년 사기 혐의로 다시 4년형을 선고받았고, 2000년 5월 구권 화폐 사기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돼 형을 살기도 했다. 세간의 관심은 그녀의 배후에 쏠렸고 장 씨의 형부이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이었던 이규광 씨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역설적이지만 “여성은 경제를 모른다” “여자는 통이 작다”며 으스대던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장 씨의 존재 앞에서 코가 납작해졌던 사건이었다. 장 씨는 재판에서 “경제는 유통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린다김 미모의 로비스트… 핑크빛 연서 화제

○ ‘여성 원조 로비스트’ 린다 김

재미교포 출신의 미모의 여성 군수물자 로비스트, 1996년 이양호 당시 국방장관이 김 씨에게 보낸 세 통의 핑크빛 연서(戀書), 그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화제를 몰고 다녔던 린다 김(55) 씨. ‘신정아 씨 허위학력 파문의 최대 피해자’로 요즘 다시 회자되는 김 씨는 언론이 신 씨를 ‘제2의 린다 김’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아픈 생채기를 되씹고 있다.

김 씨의 경우 사건의 본질보다 미모의 로비스트와 장관,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인해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김 씨가 군 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 사업인 ‘백두사업’ 팀장에게 제공했다는 뇌물이 1000만 원에 불과한 것만 봐도 그렇다. 김 씨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언론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 ‘제2의 린다 김’이라니, 왜 내 이름을 거론하느냐. 신정아 사건과 내 사건이 어떻게 같으냐”고 항변했다.

신정아 학력위조로 ‘문화권력 신데렐라’ 꿈꿔

○ 부조리가 빚어낸 꽃 신정아

여자, 권부의 남자, 돈, 종교, 미술, 대학, ‘부적절한 관계’…. 어느 시대든 스캔들은 허위에 찬 기만적 현실의 그림자다. 학력으로 사람과 능력을 평가하는 시대적 부조리가 ‘예일대 박사 출신 명문 미술관 큐레이터’라는 허상을 만들어 냈다. 신정아 씨는 너무나 쉽게 그 부조리에 순응하는 세상을 조소하면서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문화권력의 ‘신데렐라’를 꿈꾼 것은 아닐까.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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