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古書책향기에 빠져살다 삶의향기를 발견한 사람들

  • 입력 2007년 9월 22일 02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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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센 강변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파리 센 강변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외국을 여행할 때, 그곳의 고서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책 수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책 컬렉터인 화봉문고의 여승구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책 수집을 시작한 지 1년 뒤인 1983년, 여 대표는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고서점에서 ‘천로역정’ 한글 초판본을 발견했다. 책 수집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니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흥정에 들어가 끝내 그 책을 손에 넣고야 말았다. 물론 이 책을 국내로 들여오다 책 밀수로 몰려 애를 먹긴 했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해서 여 대표의 애서(愛書)가 됐다.

여 대표가 26년 동안 수집한 책은 고서부터 근대기 서적까지 약 10만 권. 그는 요즘도 경매를 통해 수시로 책을 사들인다. 그야말로 책에 미쳐 사는 사람이다.

유럽의 고서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 버린 사람도 있다. 1990년대 스티커 사진 촬영기를 개발해 돈을 꽤 벌었던 김준목 씨. 무역회사 직원이었던 1980년대 말, 그는 유럽 출장을 가면 짬을 내 벼룩시장이나 고서점을 즐겨 찾았다. 그러다 1993년 이탈리아 로마의 길거리에서 한 고서 노점상을 만났다. 그 노점상은 화가이기도 했다. 노점상에게서 지휘자 정명훈 씨도 거기서 책을 사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노점상에게 한두 권씩 책을 사들이다가 아예 노점상을 따라 이탈리아 시골을 누비면서 책을 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북, 오스트리아 황제가 보았다는 16세기 성경 등 주로 르네상스기에 간행된 인문 예술 건축 과학분야 고서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그가 지금까지 구입한 서양 고서는 3000여 권. 책값으로 나간 돈은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된다고 한다. 번 돈을 모두 책 사는 데 쓴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는 서양 고서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고 고서를 영인해 다시 간행하는 일을 시작했다. 서양 고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어 라틴어도 공부했다. 아예 직업을 바꿔 서양 고서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국내 고서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꽤 있지만 서양 고서를 수집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 편이어서 그의 존재는 매우 소중하다.

그런 그가 최근 무역업을 시작했다. 서양 고서 도서관 설립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가 꿈꾸는 것은 한국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다. 서점이기도 하고 도서관이기도 한 그런 공간, 젊은이들이 유럽의 문화를 배우고 역사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 외국의 고서점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한 김준목 씨. 그의 열정이 국내 첫 서양 고서 도서관으로 열매 맺길 기대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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