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여자들이 본다, 남자들의 동성애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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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여성들의 색다른 취향이 화제였다.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높이 탓도 있겠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인터넷 성인 사이트 접속률이 높다더라’, ‘여성도 남성의 벗은 몸을 즐긴다’, ‘여고생들 사이에서 남성 간 동성애 이야기가 인기다’ 등의 소식이 가십난을 가득 채웠다. 궁금한 일이다. 정말 여성들도 똑같은 걸까?

만화 ‘순애보2’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이다. 전편에서는 이현숙 작가가 그린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편이 주목받았다. 여자 친구의 ‘남동생’을 함부로 사랑한 ‘남자’ 이야기였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심혜진 작가의 ‘달밤은 위험천만’(사진), 나예리 작가의 ‘Get Real’이 눈에 뛴다. 심 작가는 늑대인간이 된 룸메이트와 그 친구의 동성애를, 나 작가는 남성 과외 선생님과 남성 제자의 사랑을 그렸다.

늑대인간은 불알친구에게 “어차피 절교할 거면 한번은 하겠어”라며 생떼를 부리고, 제자는 선생에게 “난 지금…학생이 아냐. 니 애인”이라며 호기를 부린다. 남성들이 지닌 성적 코드를 코믹하게 활용하고 있는 에로비디오 영화 같다. 심 작가는 작품 말미에 있는 후기 형식의 글에서 에로비디오 같은 작품 내용에 대해 자조 섞인 농담을 흘리기도 했다.

기실 동성애 만화는 아마추어 만화가들의 습작 소재였다. 여성 만화의 중요한 서사적 구조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사랑에 대한 책임’이다. 주인공은 하지 말라는 사랑을 하는 대신 가혹한 책임을 불사한다. 그처럼 큰 사랑이 있어야 독자들은 감동한다.

작가들은 이 뻔한 구조를 새롭게 조성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하지만 동성애 만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오는 극적 긴장감을 남자 대 남자라는 금기의 이미지만으로 손쉽게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서사는 없고 이미지만 판치는 여성용 포르노, 이른바 ‘야오이물’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독자의 선택은 달랐다. 전통 순정만화의 서사는 서사대로, 동성애 만화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소비했다. 두 편의 단편에서 늑대인간과 제자는 성적 체험 앞에 맹목적인 어린 남성의 모습이다. 반면 룸메이트와 선생은 어린 남자의 태도를 통제하면서도 순종적인 면모를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다. 남자 대 남자를 그려 놓고 남자와 여자의 전형적인 첫경험 이야기를 재연한다.

목숨을 거는 순애보(殉愛譜)라기보다는 순수하고 예쁜 사랑 이야기다. 여주인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꽃보다 귀한 남자가 있다는 것만 다르다. 이 같은 현상은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성 역할, 성 정체성 등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고민은 다른 단편에서는 찾을 수 없다. 사랑이 통하는 장면과 볼거리로서의 남자만 가득하다. 7명의 작가가 일곱 커플의 이야기를 담았으니 한번에 14명이다. 여성도 본다. 여성이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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