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언 교수 “한반도 사냥법 동아시아서 가장 정교”

  • 입력 2007년 9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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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사냥은 취미일 뿐이다. 덫 함정 올가미를 이용한 사냥법도 잊혀진 옛 전통일 뿐이다. 그러나 선사시대 이후 사냥은 생업의 모든 것이었고 농경시대와 근대에도 삶의 중요 부분을 차지한 ‘문화’였다.

민속학자 김광언(문화재위원회 민속문화재분과위원장·사진) 인하대 명예교수는 11일 “사냥은 우리 민족의 기층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원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내 최초로 동아시아 수렵문화사를 집대성한 ‘한·일·동시베리아의 사냥’(민속원)을 펴냈다.

“우리 사냥문화사의 계보를 세워 세계 수렵문화사의 족보에 올린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까요. 문화사 연구는 동아시아에서 우리 문화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비교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사냥사를 다른 문화와 비교하기는커녕 우리 것을 제대로 정리한 연구도 없더군요.”


▲ 촬영 : 동아일보 문화부 윤완준 기자

[화보]한반도 사냥법 그린 그림들

김 교수는 1950년대 북한 학자가 낸 서너 쪽짜리 ‘묘향산 수렵도구’ 이후 출간된 연구나 책은 사냥터와 사냥감 분포 지역을 정리한 ‘수렵 가이드’ 수준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사냥 문화는 조선에서 왔는데 조선 자료가 부족해 장애가 된다”는 일본 학자의 글을 읽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 등 정사뿐 아니라 삼국유사를 비롯한 야사, 조선 전기 수필집인 ‘용재총화’ 같은 개인문집, ‘동사강목’ 등 개인이 펴낸 역사책을 모두 뒤졌다. 그의 말대로 “사냥과 관련해 더 나올 게 없을 정도”였다. 방방곡곡 산골의 노인들을 만나 옛 사냥법을 듣는 현지 조사도 함께 했다.

“우리 민족의 뿌리가 시베리아와 몽골에 있으니 한국 일본 동시베리아의 사냥문화도 한 줄기로 이어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죠. 수렵문화 사냥법 제의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이를 실증했습니다.”

김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고고학과 역사학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고고학자는 땅에서 나온 유물에만, 역사학자는 문헌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 사례로 선사시대의 함정(사냥을 하기 위한 위장 구덩이) 유적을 들었다.

일본은 20년 동안 함정 유적 수십만 개를 발굴했다. 우리는 2000년대 이후 고작 200여 개를 발견했다. 한반도에 함정 유적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사냥사에 무심한 고고학자들이 그냥 지나친 탓이다.

그는 동아시아 사냥문화의 공통점과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냥법으로 덫사냥을 들었다. 한국의 ‘양틀’은 울을 만든 뒤 그 위에 통나무를 올려놓아 미끼를 건드린 동물을 덮치도록 고안됐고, ‘외양틀’은 덮목으로 쓰이는 통나무를 한쪽만 들어올린 것이다. 일본의 ‘아키비라’와 동시베리아의 ‘도우이’가 외양틀과 흡사하다.

“도우이는 덮목을 한쪽만 들어올려 양틀보다 성능이 떨어지고 일본의 아키비라는 양틀보다 복잡해 설치가 번거롭습니다. 한반도의 사냥법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정교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죠.”

김 교수는 디딜방아 지게 등 농기구와 전통놀이의 문화사를 동아시아 지역 전체 속에서 조망하는 연구를 계속해 왔다. 앞으로 쟁기와 맷돌의 문화사도 천착할 계획이다. 그는 “문화의 전파와 이동을 무시한 채 우리 것만 연구해서는 한계에 부닥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화보]한반도 사냥법 그린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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