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3년 美사만다 스미스양 소련 방문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코멘트
“안드로포프 씨 귀하,

제 이름은 사만다 스미스입니다. 열 살이고요.

우선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입니다. 전쟁을 하실 생각이 있는 건가요? 아니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하실 건지 얘기해 주세요. 왜 세계를, 적어도 우리나라를 정복하려 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도록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사만다 스미스.”

1982년 11월 미국의 초등학교 5학년 소녀가 유리 안드로포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편지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에 취임해 세계에 핵전쟁의 공포가 높아가던 때였다.

어린이의 글로서는 당돌하기까지 한 이 글은 이듬해 4월 소련 관영 일간지 프라우다에 실렸다. 안드로포프는 다정함이 넘치는 답장을 사만다에게 보냈다.

“넌 ‘톰 소여’의 친구 베키처럼 용기 있고 정직한 소녀 같구나. …우리는 지구의 모든 사람을 위해 평화를 원한단다. 우리의 아이들과 너 사만다를 위해서도….”

안드로포프는 이어 스미스를 소련에 초청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 소련이 ‘악의 제국’이 아님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초청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놓고 미국 내에선 큰 논란이 벌어졌다. 공산주의자의 선전술에 말려들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최연소 친선대사’의 소련 방문을 지지했다.

스미스는 1983년 7월 7일 부모와 소련을 방문했다. 와병 중이던 안드로포프는 스미스를 만날 수 없었다. 그 대신 전화를 걸어 꼬마 손님의 방문을 환영했다.

소련은 2주간의 일정을 치밀하게 짰다. 숙소 주변에 영어를 하는 교사와 학생들까지 배치했다. 그러나 스미스의 눈에는 소련이 감추고 싶었던 식품 부족과 같은 문제점이 띄었다.

방문을 마치며 스미스는 “소련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대국에 해코지를 할 사람들이 아니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살고 싶으냐는 질문엔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더 좋다”고 답했다.

스미스는 귀국 후 여러 토론회에 참여하고 TV에도 출연했다. 일본의 한 심포지엄에선 “미국과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각자의 손녀를 교환 방문케 하자”는 깜찍한 제안도 나왔다.

그러나 운명이 그의 인기를 시샘했던 것일까. 1985년 여름 TV 출연을 마치고 비행기로 집에 돌아오던 스미스는 악천후 속에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면서 목숨을 잃었다. 겨우 열세 살 때였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