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피란길에 행방불명…‘잃어버린 3개월’ 찾았다

  • 입력 2007년 7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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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사원의 행방이 불명인바 가족 되시는 분은 즉시 본사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인갑(편집국장)….”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2면에는 행방불명된 직원을 찾는 ‘사고(社告)’가 실렸다. 전쟁 이후 발행이 중단된 동아일보가 9·28 서울 수복 이후 처음으로 복간해 발행한 신문이었다. 포화(砲火)에 인쇄시설이 불타 버리는 바람에 이 신문은 서울 을지로 2가에 마련된 동아일보 임시 사옥에서 타블로이드(2면)로 발간됐다.

같은 해 10월 24일자 1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허터지면(흩어지면) 망한다”는 담화가 톱기사로 실렸다. 이 대통령이 동포가 서로 마음을 열고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9·28 수복 이후 1950년 10∼12월에 발간된 동아일보는 본사나 국회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듬해인 1951년 1·4후퇴 때 다시 한 번 부산으로 황망히 피란가면서 제대로 보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신문들이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한국은행 자료실이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1992년 12월까지 모든 신문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행은 모두 281권으로 제본된 동아일보를 3일 본사에 기증했다. 기증된 신문 중에는 창간호를 비롯해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 관련 기사, 1948년 대한민국 건국,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격사건 등 근현대사의 주요 현장들이 생생하게 담긴 신문들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은행은 1950년 6월 12일 설립된 뒤부터 동아일보를 보관해 왔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동아일보는 한국은행의 전신인 조선은행(1911년 조선총독부 설립)이 보관해 오던 것을 인계 받았다.

한국은행 지식정보실 정보자료팀 김영환 차장은 “6·25전쟁 때 한국은행은 본관 밑에 금괴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수송열차 편으로 부산으로 피란 갔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부산 피란 시절에도 발행된 신문을 수집해 환도할 때 다시 가져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자료팀 구교윤 씨는 “1950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던 함기용 씨가 1984년경 자신의 골인 사진이 담긴 동아일보 기사를 찾으러 여기에 온 일이 있다”며 “그때 나도 한국은행이 동아일보를 창간호부터 보관 중인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구 씨는 “요즘엔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하지만 예전엔 금리 인상이나 경제 관련 기사를 찾기 위해 직원들이 자료실에서 동아일보를 뒤졌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반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송창헌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에게 자료를 기증했다. 송 부총재보는 “한국은행이 수집한 신문 중 창간호부터 최근호(1992년 이후는 축쇄판)까지 가장 오랜 기간 빠짐없이 보관된 신문은 동아일보”라며 “신문은 한국은행이 금융정책을 세울 때 기본적인 정보자료였다”고 말했다. 본사는 경기 안산시에 있는 영구 보존 시스템을 갖춘 서고에 기증 신문들을 보관할 계획이다.

정진석(언론학)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한국은행이 보관해 온 동아일보는 직원들만 제한적으로 열람한 것이어서 보관상태가 좋고 사료적 가치가 크다”며 “일제강점기 신문이나 6·25전쟁 중 원본이 훼손된 신문들을 보충해 줄 수 있어 언론학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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