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이 책]호리 가즈오 ‘일본 자본주의와 한국·대만’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민족주의적 의식이 강한 동북아시아 3국 간에 근현대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일본 정치인들의 반성이겠지만, 다른 하나는 동북아시아 각국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인식에 근거한 공통의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도됐다고 해서 이 책이 경제적인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촌 조직의 문제나 지식사회학 분야에 대한 연구도 포함돼 있다. 또한 단순한 비교연구가 아니라 일본을 공급자로 하여 진행된 조선과 대만에서의 발전과정이 왜 서로 다른 형태를 띠게 됐는가에 대한 분석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석을 고려하면, 단순히 ‘식민지 근대화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가 아니며, 특정 분야를 한 국가에 한정해 진행했던 기존의 연구 성과와는 분명 차별성을 갖는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문에서 밝힌 ‘오해·곡해’를 막기 위한 ‘왜곡된 국제관계’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을 통해서 얼마나 잘 드러나는가는 의문이다. 이 책의 서장은 조선과 대만을 포함한 ‘일본제국’이 영국·프랑스에 비해 비교우위를 지녔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에 ‘왜곡된 국제관계’는 빠져 있다.

아울러 일본의 식민지 정책뿐만 아니라 ‘역으로 식민지의 요인이 일본 본국을 규정한 문제’까지도 시야에 넣겠다고 했지만, 일본에서 식민지로 향하는 ‘일방통행’의 역사만이 나타난다. 단지, 유사한 정책이 실행되었음에도, 조선과 대만에서 차이가 나타났던 이유가 전통사회의 차이에서 갈라졌다는 점을 간단히 언급했다는 사실이 주목될 뿐이다.

그나마 전통사회에 대한 언급도 식민지의 후진성을 규명하는데 동원됐다. 식민지 시기의 근대화를 빛나게 하기 위해 한국의 전통사회를 폄훼했던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적 인식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설령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다른 식민지에 비하여 훌륭했다고 하더라도 ‘준비된’ 조선인들과 대만인들 없이 식민지의 발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들은 이 책에 실린 연구의 대부분이 ‘통계’ 중심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현대 학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요인 중 하나는 ‘수치’를 통한 과학적인 연구방법이다. 그러나 수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최근 한국 경제가 보여 주는 수치와 한국인들의 삶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식민지에서 나타나는 경제 관련 수치가 과연 식민지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을까.

또 하나의 문제는 1945년 이전의 관계가 1945년 이후 조선과 대만의 발전을 ‘선언적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광복 이후 패망한 일본의 개혁, 6·25전쟁으로 인한 유산의 파괴, 중국혁명이 대만에 미친 영향, 1950년대 미국의 원조와 제3세계 경제계획의 영향 등 다양한 사실이 제외됐다. 이러한 ‘비약’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한 이 책에 의하면 ‘식민지적 유산’은 한국과 대만 경제성장의 배경은 되지만, 1997년 금융위기의 배경은 되지 않는다.

서문에 있는 ‘역사학이 현대와 과거의 대화’라는 거대담론의 자기중심적 해석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공동연구의 성과가 약간이라도 적극적인 사회적 의미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라면 수치가 보여 주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현대 학문이 ‘근대’를 넘어서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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