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어느덧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분위기"

  • 입력 2007년 2월 19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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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베를린에 처음 왔었어요. 그 때만 해도 한국 영화가 생소하다는 반응이었고 나는 영화제 첫 방문이라 '촌뜨기' 같았고…. 지금은 어느덧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박찬욱 감독의 목소리는 '기쁨' 대신 '놀라움'이 가득했다. 박 감독은 17일 밤(현지 시간) 제57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특별상인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특별상은 영화제 본상 중 하나로 영화 예술의 혁신을 도모한 작품에 준다. 장선우 감독이 1994년 영화 '화엄경'으로 이 상을 받은 바 있다.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서는 370여 편의 출품작 중 22편이 경합을 벌여 중국 영화 '투야의 결혼'(감독 왕쿠안)이 최우수 작품상인 금곰상을, 이스라엘 영화 '보퍼트'의 감독 조지프 세더가 감독상인 은곰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특별상 수상 소감에 대해 "나에 대한 끝없는 관심이, 그리고 한국 영화가 대접받는 현실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 곳 영화 관계자들이 '왜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나'를 가장 많이 물어봤어요. 그동안 '박찬욱 표' 영화를 많이 봤다는 증거겠죠. 정신 분열증 환자들의 망상 세계를 독창적으로 해석했다는 말도 들었고, 한 심사위원은 내 앞에서 영화 속 주인공 일순(정지훈·가수 비)이 부른 요들송을 똑같이 따라 부르더군요."

수상을 예감이라도 했을까? 그는 "시상식 전날 협회에서 상을 준다며 출국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무슨 상인지는 몰랐다"며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는데 이 상으로 인해 내 아내가 '내 남편은 영화감독이지만 괜찮아'라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그동안 이 영화로 인해 속앓이를 한 것도 털어놓았다. 지난해 말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가수 비와 여배우 임수정이 주연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그러나 개봉한 뒤에는 "난해하다" "재미없다"는 반응을 들었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상업영화라고 만들었는데 본전도 못 뽑았으니 투자자들에게 미안했죠. 관객들이 이 영화를 비유나 상징 등 관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원했는데…. 아직도 전 이 영화가 어려운지 잘 모르겠어요. 그나마 해외에서 인정받은 셈이니 영화 수출을 통해 적자를 메우면 주변 사람들이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베를린에서 설을 보내고 19일 귀국한 그는 "그나마 가족에게, 한국 영화계에 좋은 설날 선물이 됐으면 한다"며 덧붙였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순이와 영군이(임수정)한테 먼저 자랑하고 싶어요. 다른 감독들은 시상식 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이젠 정말 일순이 영군이 모두 사이보그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하하."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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