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준씨 장편소설‘킬러리스트’ 살인범 통해 현대사의 폭력 그려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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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준(34) 씨의 장편소설 ‘킬러리스트’(랜덤하우스)는 얼핏 대중소설처럼 보인다. 범죄 심리학자가 연쇄 살인 용의자의 심리를 파헤친다는 도입부를 읽다 보면, 이 소설을 ‘사이코 스릴러’라는 카테고리 앞으로 밀어 놓게 된다.

그런데 몇 장 나가면 그렇게 밀어 놨던 것을 도로 끌어당기게 된다. 소설은 살인 용의자의 무의식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풀어 나가는 한편, 용의자의 전생이라는 전제를 두고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헤집는다.

범죄 심리학자인 서린이 맡은 일은 연쇄 살인 용의자의 여동생 김주희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 서린이 최면을 걸자 김주희는 자신이 전생에 빨치산에 투입된 일본군 스파이였으며, 오빠 김종희는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한 항일 빨치산의 일원이었다고 밝힌다.

소설은 장(章)을 교차하면서 사이코드라마와 역사소설을 번갈아 서술한다. 김종희, 김주희 남매가 들려주는 전생을 통해 항일투쟁과 6·25전쟁, 베트남전, 민주화운동 등 가혹한 현대사가 격정적으로 풀려 나온다. ‘킬러리스트’라는 제목이 살인자 명부(killer-list)라는 표면적 의미 아래 ‘킬러+테러리스트’의 합성어라는 다른 뜻이 있듯, 소설도 연쇄 살인 용의자의 속내를 추적하는 얼개 아래 항일 빨치산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의 폭력을 숨겨 놓았다.

작가 자신이 “역사에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으로 죽어간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거니와, 이야기는 지극히 가볍고 자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대인의 삶 뒤에 얼마나 큰 역사의 짐이 지워져 있는가를 암시한다.

제2회 문예중앙 소설상 수상작으로 “인간의 구원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소설가 은희경), “주밀한 탐사와 준비에서 나오는 디테일”(소설가 성석제) 등의 평가를 받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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