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는 새 세상을 꿈꿨고…예언은 역모를 키웠다

  • 입력 2006년 12월 1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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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백승종 지음/379쪽·1만4500원·푸른역사

◇한국의 예언문화사/백승종 지음/386쪽·1만6500원·푸른역사

이인좌의 난, 남원 괘서 사건, 이율의 난…. 조선의 르네상스기라 불렸던 영조와 정조가 통치하던 18세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전 어느 시기보다도 역모 사건이 많았다. '남사고비결', '정감록', '요람', '금귀서' 등 조선왕조의 종식을 예언한 서적이 서북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역모세력의 길잡이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영·정조 시기에 있었던 세 역모 사건을 통해 18세기 조선의 모습을 재구성한 책이다.

책은 '김원팔 일가 역모사건'의 재구성으로 시작된다. 1733년 전라도 남원에서 김원팔 3형제가 영조와 사도세자를 비난하는 벽보를 붙이며 사건이 일어났다. 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한 이 사건은 영조가 직접 국문에 나섰고 김원팔의 단독 범행으로 종결됐다.

과연 그랬을까? 당시 현지 조사관이었던 이방 최정도의 추리일지를 통해 저자는 김원팔의 배후에는 몰락 양반 최봉희가, 최봉희의 배후에는 예언서 '남사고비결'을 신봉하는 거대한 비밀결사집단이 웅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인방 역모사건(1783년)과 문양해 역모사건(1785년)도 마찬가지. 당시 조정은 이 사건을 예언서에 경도된 일부 몰락 양반 세력의 단발성 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저자는 꼼꼼한 사료 고증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낸다. 중인이 지휘하는 반군에 양반들이 합류하고 불교 승려들이 나서 반체제 지도자와 결탁하며 서울 양반들이 조선왕조타도를 주창하는 도교의 도사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바치는 등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로 설명될 수 없는 일들이 숨겨져 있었던 것.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두 역모 사건의 중심인물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이율 등의 양반이 아니라 문인방과 같은 중인과 서북 지식인들이었다고 재해석한다.

이렇게 과감한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술이부작(述而不作·사실을 기록하되 지어서 쓰지 않는다) 대신 술이작(述而作·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쓴다)의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서강대 교수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미시사적 역사 해석을 공부한 저자는 지배층의 시각으로 정리된 역모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팩션'의 글쓰기를 택했다. 해설자, 가담자와의 가상 대화, 진술 등의 다양한 접근, 추리 기법과 심리분석이 동원되며 역모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그들의 생생한 숨소리를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왜 18세기였을까.

저자는 한국의 예언서와 민중운동에 대해 학술적으로 분석한 '한국의 예언문화사'를 함께 내놓음으로써 해답을 제시했다. 저자의 시각에서 18세기는 조선의 '르네상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다. 통치 시스템의 모순이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모 사건 주동자들인 서북인, 불교 승려, 중인은 당시 부조리한 사회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실력은 있었지만 신분의 한계로 인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예언서와 역모 사건을 통해 조선의 시스템에 경고음을 보냈던 것.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역적으로 단죄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역적' 조사기록도 자세히 뜯어보면 같은 텍스트를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역모자'들이야말로 오히려 지금 우리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조선 후기 불우했던 이들에게 정감록은 조선판 '유토피아'였다. 양반 중심의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만민평등의 세계가 열린다는 예언서들은 당시 민중들이 꿈꾸는 이상향의 결정체였다. 현존하는 정감록이 18세기의 그것과 다른 것도 각 시기마다 민중들의 바람이 계속 보태졌기 때문이다. 민중들은 정감록의 신봉자이자 공동 집필자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정감록은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며 반체제 비밀결사조직을 형성했다.

그럼에도 18세기 조선의 지도층은 위기의식이 없었다. 현명한 군주와 함께 하는 태평성대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역모자 세력은 부덕하고 음험한 저항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일어날 홍경래의 난, 동학농민운동, 체제 붕괴라는 무거운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대가는, 시대의 경고를 무시해버린 지도자 뿐 아니라 애꿎은 백성들까지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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