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진 씨, 다산 제작 ‘칠실파려안’ 재현-촬영

  • 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정약용의 생가 부근에서 ‘칠실파려안’ 기법으로 찍은 사진. 10×12인치 나무 목재 카메라에 돋보기 렌즈를 붙여 촬영했다. 사진 제공 최인진 씨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정약용의 생가 부근에서 ‘칠실파려안’ 기법으로 찍은 사진. 10×12인치 나무 목재 카메라에 돋보기 렌즈를 붙여 촬영했다. 사진 제공 최인진 씨
“안타까운 것은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묘사하기가 매우 어렵고….”

천재 정약용(1762∼1836)도 순간포착의 기술만큼은 끝내 터득하지 못했던 걸까. 다산 정약용의 ‘시문집’ 1집 10권 설(說)문에 나오는 이 대목은 오늘날의 카메라 원리를 묘사한 조선 최초 기록의 일부다.

다방면에 뛰어난 실학자로 알려진 다산은 이 원리를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기계를 칠실파려안(漆室파려眼)이라고 명명했다. ‘칠실’은 암실, ‘파려안’은 렌즈를 일컫는 당시 단어로 카메라 옵스큐라의 순수한 우리식 명칭인 셈이다.

다산은 ‘여유당전서’에서 칠실파려안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다. “어느 맑은 날 방의 창문을 모두 닫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고 구멍을 하나만 남겨 애체(볼록렌즈)를 그 구멍에 맞추어 끼운다. 투영된 영상은 눈처럼 희고 깨끗한 종이 판 위에 비친다.”

물론 ‘칠실파려안’은 현대의 카메라와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이다. 다산의 기술은 렌즈를 통해 투영된 영상을 채색함으로써 실물과 똑같이 그려내는 데 쓰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초기 카메라의 원리가 서구에서도 19세기 초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볼 때 다산의 기술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정약용이 사용한 기술을 재현해 찍은 사진전 ‘다산 정약용의 사진 세계’가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김영섭 사진화랑에서 열리고 있다.(무료·02-733-6331)

전시회를 연 사진작가 최인진(65) 씨는 1970년대 초 ‘여유당전서’에서 ‘칠실관화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5년에 걸친 고증 작업 끝에 1978년 한국현대미술관에서 발간한 ‘현대미술사’에 이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이번 작업은 이론적으로만 실재했던 다산의 기술을 사진으로 직접 재현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최 씨는 목재 카메라를 만들고 필름이 없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해 필름 대신 인화지를 썼다. 촬영은 다산의 생가가 있는 남한강 일대와 그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군에서 했다. 최대한 다산이 보았던 장면에 근접하기 위해서다.

최 씨는 이 기술이 1631년 국내에 소개된 아담 샬 신부의 ‘원경설’에 수록된 ‘차조작화(借照作畵)’에서 힌트를 얻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볼록렌즈를 부착한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현존하는 다산의 작품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를 이용해 교우 이기양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여유당전서’의 기록뿐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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