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중” 한마디면 끝? 요즘 세상에…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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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법을 위반해 진입로가 강제 폐쇄된 KBS2 ‘황진이’의 야외세트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건축법을 위반해 진입로가 강제 폐쇄된 KBS2 ‘황진이’의 야외세트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주택단지 입구에 세워진 ‘방송촬영 금지’ 푯말.남원상 기자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주택단지 입구에 세워진 ‘방송촬영 금지’ 푯말.남원상 기자
《‘알림-주택 및 공원 내의 방송 촬영 행위를 금합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 주택단지 일대.

군부대도 아닌 작은 마을에 방송 촬영을 금지한다는 푯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목조 주택들이 들어선 이곳은 한때 드라마와 CF 촬영지로 각광받았으나 촬영으로 인한 불편 민원이 쇄도하면서 주민자치단체가 2002년 이같이 결정했다.

이후 이곳에서 방송 촬영은 대부분 금지되고 있으며 통반별로 주민들이 과반수 찬성할 경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당시 주민대표였던 박관수(44) 씨는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제작진이 찾아와 동시녹음에 방해가 된다며 못하게 하고, 공원에 나와서 노는 애들에게 ‘집에 가라’고 했다”며 “주민들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새벽까지 소음을 내는 등 주객이 전도됐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사나 외주 제작자들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야외에서 만들다가 저지르는 ‘촬영 횡포’는 이뿐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초래해 마찰을 빚기도 하고 불법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잦다. SBS ‘프라하의 연인’ 제작진은 지난해 덕수궁 돌담길에 종이 소품을 붙여 훼손시켰다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으나 이같은 횡포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KBS2 ‘황진이’(수 목요일 오후 9시 55분)의 제작진은 9월 초부터 두 달간 경기 양평군 서종면 일대의 팔당상수원 수질보전지역에 세운 불법 야외세트장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9월 말 ‘황진이’ 제작사인 올리브나인과 계약하고 세트장을 조성한 정모 씨를 산지관리법 및 건축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 뒤에도 “화면 효과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진입로가 강제 폐쇄되기 전인 10월 23일까지 이곳에서 촬영을 강행했다.

8일 첫 방영하는 SBS ‘연인’(수 목요일 오후 9시 55분)은 해외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9월 중순 중국 하이난(海南) 섬 군사보호지역에서 해상 추격신을 촬영하던 도중에 중국의 최신예 군함을 배경 화면에 넣었다 현지 해군에 적발돼 필름을 압수당했다. 제작사인 케이드림 관계자는 “현지 사정을 몰라 일어난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자칫 ‘세작’ 혐의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MBC ‘여우야 뭐하니’(수 목요일 오후 9시 55분) 제작진은 지난달 12일 서울 구기동에서 야외촬영을 하며 방송 차량 주차 문제로 주민과 욕설까지 오가는 몸싸움을 벌였다. 가게 앞 무단주차와 쓰레기 투기 민원을 관할구청과 경찰서에 접수시킨 윤모 씨는 “나중에 사과를 하러 찾아온 담당자에게 ‘이렇게 민폐를 끼쳐도 되냐’고 묻자 ‘방송국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대답해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의 촬영 횡포는 방영 당일까지 야외 촬영을 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 때문. 이에 대해 한 PD는 “‘초치기’ 제작 일정 때문에 야외 촬영의 문제를 살펴볼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좋은 화면’을 얻기 위해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제작진도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방송 제작진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시대착오적 권력의식에서 비롯한 결과”라며 “방송사와 제작사가 앞장서 야외촬영 내규를 마련하고 준수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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