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0년 세계 첫 제트전투기 교전

  • 입력 2006년 11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1950년 가을. 6·25전쟁은 유엔 연합군의 참전에 이어 중공군의 도하(渡河)로 혼전일로였다. 연합군으로선 중국의 인해전술도 난감했지만 하늘도 골치였다. 중국이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MIG)-15 카드를 내놓은 탓이다.

전쟁은 양보가 없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중국은 연합군의 화력을 병력으로 눌렀다. 연합군은 지상군의 부족을 B-29의 폭격으로 메웠다. 그러자 ‘폭격기 킬러’로 통하는 미그-15가 전장에 나섰다.

눈에는 눈. 미그기와 ‘쌕쌕이’ F-80의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11월 8일 신의주 인근 상공. 미 공군은 폭격기 B-29를 엄호하기 위해 F-80 4대를 띄운다. 이를 저지하려 미그-15 6대가 출격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교전이자 미국과 소련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의 충돌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는 싱거웠다. 미그기는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격추(1대)까지 당하는 졸전 끝에 도망쳤다. 전투기의 성능보다는 신참으로 구성된 중국 조종사의 실력이 모자랐다.

분노한 건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군사과학만큼은 미국보다 낫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 공군의 재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그기는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마저 어려워지자 미국은 승부수를 던진다. 시험 운용하던 신예 전투기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공중전이 ‘도그 파이팅(근접전)’ 위주였던 상황에서 최대 1.3km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세이버는 한반도 제공권을 연합군의 품에 돌려준 명검이었다.

제트전투기의 격돌은 시작일 뿐이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수많은 곳에서 부딪쳤다.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로 시작된 ‘스타워즈’는 차라리 건강한 경쟁이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 등에서 끊임없이 대리전을 벌였다.

냉전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한번도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20세기 최강의 강대국들은 한 손엔 칼을, 다른 쪽 손엔 서로가 쥐여준 면죄부를 들고 있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