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설경구 “나쁜놈, 나쁜놈이기에 더 서러웠겠죠”

  • 입력 2006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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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설경구. 영화 ‘열혈남아’에서 복수 할 대상의 어머니에게 모정을 느끼는 건달 역할을 맡았다. 변영욱 기자
배우 설경구. 영화 ‘열혈남아’에서 복수 할 대상의 어머니에게 모정을 느끼는 건달 역할을 맡았다. 변영욱 기자
“영화 보고 나가면서 어머니께 전화 한 통씩 하십쇼.”

영화 ‘열혈남아’(9일 개봉, 15세 이상)의 시사회장. 무대 인사를 나온 배우 설경구가 말했다. 영화를 본 뒤,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건달인 재문(설경구)은 조직 동료의 복수를 위해 치국(조한선)과 함께 전남 벌교로 내려간다. 복수할 대상인 대식의 엄마 점심(나문희)이 하는 국밥집에 드나들던 재문은 자신을 아들처럼 대하는 점심에게 모정을 느끼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올해 충무로 최고’라고 입소문이 났던 시나리오는 세 배우의 열연으로 가슴 뭉클하게 영화화됐다. 시사회가 끝나고 설경구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어머니’ 얘기가 먼저 나왔다.

“전 효자 아니에요. 무뚝뚝하고 말수 적고. 자식들이야 속 썩이는 게 일이지, 영화 속 나문희 엄마 모습은 개인의 어머니라기보단 ‘세상의 엄마’죠. 우리 엄마요? 내가 군대를 여름에 갔는데 우리 엄마가 군복 입은 애들만 보면 하드를 사 줬대요. 다 자식 같아서. 엄마라는 존재가 그래요.”

재문이 점심에게 매번 무뚝뚝하게 “밥 줘여” 하는 것은 대한민국 보통 아들들의 모습. 점심은 메인 테마인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 가사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는’ 보통 엄마의 모습이다. 설경구는 이 노래에 대해 “마음을 움직이는 가사”라고 했는데 평소 촌스러운 옛 노래로 생각했더라도 이 영화에서만은 절절하게 가슴을 후빈다.

그의 연기는 ‘역시나’였다.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눈빛이나 능글맞게 건들거리는 코믹한 모습, 눈물을 참으며 일부러 욕을 하는 얼굴 표정 등 하나하나가 인상적. 특히 나문희와 함께하는 장면에서 두 배우의 힘이 관객을 압도한다.

“나문희 엄마는 항상 신인 같은 자세로 하세요. ‘연습벌레’시고. 완벽하게 준비 안 되면 안하시죠. 저는 반대로 많이 연구하지 않는 편이에요. 대본도 거의 현장에서 보고. 누구를 모델로 하거나 관찰했느냐고 물으면 난처해요. 없다고 하면 불성실해 보이잖아요. 근데 전 말보다 느낌이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두 배우, 연기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영화 속 재문에게 푹 빠져 있었다. 영화에서 점심은 재문에게 꽃무늬 셔츠를 사 준다. “재문은 그런 걸 받아 본 적이 없는 놈인데, 퉁퉁거리지만 속으로 얼마나 좋았겠어요. 전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나문희 엄마가 ‘뭐가 그리 서러웠냐’고 말한 게 제일 가슴에 남아요. 나쁜 놈이죠. 그렇지만 얼마나 몸부림치며 살았겠어요. 얼마나 서러웠겠어요.”

영화는 충남에서 전남까지 10여 곳의 시골마을을 돌며 촬영됐다. “충청도에서요. 어떤 주민이 ‘영화 제목이 뭐유’ 하시기에 ‘열혈남아’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뭐라고 했게요.” 대답은 이랬다. “응…(5초쯤 지난 뒤) 열흘 남았단 얘기유?”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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