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걷기는 영원하다…‘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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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조지프 A 아마토 지음·김승욱 옮김/568쪽·2만5000원·작가정신

《“흑인 짐꾼, 부두 노동자, 인부 등이 짐의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몸을 흔들며 비틀거리던 오랜 전통에서 나왔다. 그것은 바퀴가 달린 탈것이나 동물을 운반수단으로 한 적이 없는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던 전통적인 방법이었다.”

영국의 도시 연구가 피터 홀은 현대 음악의 주요 장르인 ‘록(rock)’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역사학자가 인류의 계급을 ‘걸어야 되는 자’와 ‘걷지 않아도 되는 자’로 나눴던 것처럼 ‘걷기’는 인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천하고 열등하고 궁색함의 표상이었다. ‘걷기’는 인간이 특별한 동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축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프 A 아마토가 지은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는 ‘걷기’를 통해 살펴본 인류의 역사다. 걷는 행위가 인류에게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문명을 가져다주었다고 보는 저자는 ‘걷기’라는 코바늘로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촘촘히 짜 나간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인류 역사는 “태초에 걷기가 있었다”고 설파했다. 인류가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두 손을 사용하게 됐고, 직립 자세는 기어 다닐 때보다 20%가량 더 많은 에너지를 뇌로 날랐다. 문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문명은 ‘걷기’를 배신했다. 진화하면서 가축을 이용하고 농경을 시작하고 국가를 만든 인류는 스스로 걷기보다는 말과 낙타를 이용했고 정복전쟁으로 잡아온 노예를 부려 자신을 이동하게 했다. 요즘 말로 ‘비호감’이었던 ‘걷기’는 역사에서 외면당했다.

중세의 지배계급인 ‘기사(騎士)’를 뜻하는 ‘Chivalry’(영어), ‘Chevalier’(프랑스어)가 말(馬)을 뜻하는 ‘Cabllus’(라틴어)에서 나온 것처럼 ‘걷기’는 하층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저자는 ‘걷기’에 대한 이런 인식이 바뀐 것은 르네상스 이후로 본다.

도시(都市)의 부르주아 계급은 성 안에 머물던 폐쇄적인 중세 귀족과 달리 무도회와 오페라 같은 좀 더 개방적인 사교 문화를 만들었다. 극장이나 사교장 안에서 말을 탈 수 없었던 이들은 남들 앞에서 걸어야 했고 다르게 보이기 위해 느리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탄생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에티켓’이다.

근대에 들어 칸트나 루소 등 지식인에게 사랑받으며 ‘걷기’는 상류층의 여가 활동으로 발전했고 비로소 천한 이미지에서 탈출한다.

이러한 역사 과정을 나열한 저자는 걷기의 미래에 대해서도 낙관적으로 본다. 자동차와 같은 편리한 이동 수단의 발달로 걷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걷는 것을 귀찮아하지만 ‘걷기’만이 가진 기능을 계속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도보 시위다. 1786년 바스티유 궁전으로 몰려간 프랑스 군중으로부터 시작된 도보 시위는 1920년대 간디의 인도 독립 투쟁, 1960년대 마틴 루서 킹의 흑인 민권운동 등을 통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이고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으로 발전했다.

또한 현대 의학이 건강을 위해 매일 1만 보씩 걷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산책이 여전히 주요 여가 활동으로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도 ‘걷기의 운명’을 낙관하는 이유다.

동양의 사례가 배제된 채 로마, 중세 유럽 등 서구의 역사만으로 서술된 것은 아쉽지만 선사고고학부터 문학, 종교, 정치를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자료와 풍부한 역사적 사례가 가져다주는 재미는 그러한 단점을 덮기에 충분하다.

중세 시대의 예루살렘 성지 도보 순례나 흑사병 치유를 위한 대규모 속죄 도보 행렬 사례 등을 통해 중세의 비참했던 환경과 맹목적 신앙의 사회상을 그려내는 미시사적 역사 해설은 저자의 글이 가진 장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평발, 부어오른 발, 뒤틀린 발가락 물집, 엄지발가락 안쪽의 염증, 갈고리 모양의 기형 발가락, 허리 디스크, 탈장, 치질 등은 모두 직립보행과 관련된 질병이라고 한다. 진화론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골격은 ‘사족(四足)보행’에 맞게 형성됐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직립보행을 위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지불하는 셈인데 과연 그 비용은 얼마나 건지고 있는 걸까? 원제 ‘On foot: A history of walking’(2004년).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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